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대법원이 16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의 이혼소송에 대해 2심을 뒤집고 파기환송을 결정하면서, 재계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웠던 '1조3800억 재산분할 충격’이 일단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번 판결은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SK그룹의 지배구조, 주가, 재무 전략, 나아가 한국 재벌 지형 전반에 미치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이날 "2심이 비자금 300억원을 인정한 근거가 김옥숙 여사의 메모뿐이었고, 불법원인급여를 혼인 기여로 본 것은 법리 오해에 해당한다"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2심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8억 원(혼인 기간 중 형성된 재산의 약 42%)을 지급하라고 판결해 ‘사상 최대 이혼 재산분할액’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대법원이 법리적 오류를 지적함에 따라, 향후 파기환송심에서는 ‘기여도 재산정’이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불법원인급여(뇌물 등 불법 자금)를 혼인생활의 경제적 기여로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은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며 “감액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내다봤다.
■ ‘SK 주식 매각’ 우려 불식… 그룹 지배구조 안정에 숨통
이번 판결로 SK그룹은 일단 경영권 리스크에서 벗어났다. 2심 판결이 확정될 경우 최 회장은 재산분할금 마련을 위해 보유한 SK㈜ 주식 일부를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았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은 약 17.7%로, 이를 바탕으로 SK하이닉스·SK이노베이션·SK텔레콤 등 핵심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만약 주식 매각이 현실화됐다면, SK그룹의 순환출자 고리와 지배구조가 흔들릴 위험이 제기됐다. 특히 최근 2차전지·AI·반도체·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 투자 확대 국면에서 오너리스크는 자금조달과 그룹 전략의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만약 1조 원대 현금 유출이 발생했다면 그룹 신용도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했다”며 “이번 판결로 SK는 단기적 경영 안정성을 확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 SK그룹, ‘투자와 신사업 재편’에 다시 속도낼 듯
최 회장은 최근 AI 반도체, 친환경 에너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그리고 SK온의 재무 구조 개선 등 굵직한 과제를 앞두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파기환송 판결로 인해 최 회장이 그룹 재편 전략에 다시 집중할 여력을 되찾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SK그룹은 최근 △SK하이닉스의 미국 반도체 투자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소재 분사 △SK E&S의 LNG·수소 인프라 확충 등 미래 성장 사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번 판결로 인해 “불확실성 해소 → 신용 안정 → 투자 재개”의 흐름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증권가에서는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SK그룹의 투자심리 회복에 긍정적”이라며 “SK㈜의 주가 또한 오너 리스크 완화 효과로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 ‘세기의 이혼소송’, 재벌 지배구조 법리 새 기준 제시
이번 판결은 단순히 최태원-노소영 부부의 문제를 넘어, ‘혼인 중 형성된 기업 자산’의 기여도 산정 기준을 재정립한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불법 자금’, ‘법인 재산’, ‘혼인 중 형성된 지분 가치 상승’ 등이 재산분할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가 향후 대형 재벌가 소송의 선례가 될 수 있다.
경제법 전문가인 한 대학교수는 “대법원이 이번에 재벌가 자산의 형성과정에 대해 법리적 통제의 원칙을 분명히 한 점이 중요하다”며 “혼인 기여도와 기업 가치 형성의 구분을 명확히 한 판결로 기록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파기환송심 쟁점: ‘기여도 감액’ 및 ‘비자금 성격 재검토’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진 이번 사건은 대법원 판단에 따라 ‘기여도’ 산정이 새로 이뤄진다. 핵심은 △노 관장이 주장한 비자금 300억 원의 실체 △불법자금이 혼인생활 유지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는지 여부 △최 회장 보유 SK 지분의 가치 변동 기여율 등이다.
법조계에서는 “2심의 계산 착오와 불법 자금 관련 부분이 법리상 인정되지 않는다면, 재산분할금이 1심(665억원) 수준으로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