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국내 증시에서 반도체주 중심의 외국인 매수세가 ‘전력 대장주’ 한국전력(KEPCO)으로 확산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끌던 외국인 자금의 방향이 ‘실적 회복주·정책 수혜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한전이 가장 큰 수혜주로 부상한 것이다. 올해 들어 외국인 순매수 3위, 주가 상승률 96%, 영업이익 전망치 14조 원, PBR 0.5배. 숫자들이 말해주는 것은 단순한 반등이 아니라 ‘리레이팅(re-rating)’의 서막이다.
■ 외국인 자금 유입 ‘이상 신호’…1조2천억 순매수, 지분율 22%까지 확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올해 1월~10월 15일까지 외국인 순매수액이 1조2,079억 원에 달했다. 1위 삼성전자(6.4조), 2위 SK하이닉스(2.6조)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시가총액이 20~30배 이상 차이 나는 삼성전자, 하이닉스에 이어 순매수 3위를 기록한 것은 비중 대비 ‘과도한 매수세’로 해석된다.
외국인 지분율도 연초 16% → 22%로 상승했다. 주가는 같은 기간 96% 급등하며, 한국전력은 KOSPI 상승률 상위권에 진입했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한국전력의 주가와 외국인 지분율 상관계수는 0.83. 즉, 외국인 매수세가 곧 주가 상승의 핵심 동력임을 보여준다.
외국인 지분율이 2018년 이전 30~35% 수준에 비해 여전히 낮고 향후 실적 개선이 확인되면 추가 매수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내 증권사들의 평균 목표주가 4만5,583원은 현재 주가 대비 약 25~30%의 업사이드(상승 여력)를 시사한다.
■ ‘만년 적자주’의 반전…영업이익 14조 전망, 원가회수율 115% 전망
한국전력의 재무 흐름은 “적자→흑자→완전 회복” 단계로 접어들었다. 2021~2023년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던 한전은, 2023년 영업이익 8조3,647억 원으로 흑자 전환, 올해는 증권가 컨센서스 기준 14조 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된다.
유진투자증권은 올해 한전의 전기요금 총괄원가 회수율을 115%로 추정했다. 이는 전력 구매비, LNG·석탄 등 원자재 가격 안정, 원전 비중 확대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이 전기요금 현실화 필요성을 언급하며 내년 요금 인상 가능성이 커졌다 올해 4분기 ‘연료비 조정단가’가 kWh당 5원으로 동결됐지만, 기후환경요금·기반요금 등의 인상 여지가 남아 있다.
■ 원전 수출 기대감… ‘K-에너지’의 글로벌 확장 스토리
한국전력은 국내외 원전 사업을 통한 신성장 동력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미국 원전 시장 진출 및 해외 EPC 사업 확대는 향후 ‘성장 프리미엄’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원전 수출은 단순 건설 수주가 아닌, △연료 공급 △운영 유지보수(O&M) △AI 기반 안전관리 기술 수출 등 다층적 수익 구조로 확장될 수 있다. 이는 ‘脫석탄·가스 시대’에 맞는 친환경 에너지 포트폴리오 전환이라는 정책 방향성과도 부합한다.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원전 중심의 저탄소 기조 강화 → 한전의 수익성 구조 개선 → 외국인 투자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 밸류에이션 매력 여전… PBR 0.5배, “리레이팅 초입”
한전의 현재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1배, 주가수익비율(PER)은 5~6배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글로벌 전력 유틸리티 평균 PBR(0.8~1.2배) 대비 현저히 낮다. 배당 재개와 이익 정상화가 지속될 경우, ‘디스카운트 해소’ 구간 진입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증권가에서는 이를 “한전 리레이팅의 초입 단계”로 보고 있다. 즉, 실적 회복과 요금 현실화가 맞물리면, 국가 인프라 대표 가치주로의 재평가가 본격화될 것이란 의미다.
■ 단기 변수는 ‘공매도·부채 리스크’… 누적 적자 30조, 재무 안정성 확보 관건
한전 주가 급등세 뒤에는 경계심도 있다. 10월 초 기준 공매도 잔고는 64억 원, 한 달 새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이는 단기 과열에 따른 차익실현 물량과, 하락 베팅이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2021년 이후 누적 적자 30조원, 부채비율 200%대는 여전히 부담 요인이다. 전기요금 인상 시 사회적 저항이 커질 수 있고, 정치적 논란이 재점화될 경우 ‘정책 리스크’가 다시 주가를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올해 한국전력의 급등은 외국인 자금이 ‘한국 인프라 가치주’로 이동 중임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풀이된다. 단기 급등 부담과 재무 리스크는 남아 있지만, 실적 개선과 정책 모멘텀이 이어질 경우 “한전의 리레이팅은 이제 시작 단계”라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