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문제가 개인과 사회의 이해 충돌을 보여주었다면, 지역분쟁은 행정 결정과 주민 이해관계가 맞부딪히는 현장이다. 정책과 주민 의견이 충돌해서 찬반논쟁이 일어나면, 정부 신뢰는 약해지고 정책의 실행 가능성이 위협받을 수 있으며 결국 정부 실패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2편 지역분쟁
2024년 5월, 경기도를 뜨겁게 달군 사건이 있었다. 경기도가 ‘경기북부특별자치도’의 새로운 명칭으로 ‘평화누리특별자치도’를 발표하자 비판 여론과 반대 청원이 쏟아진 것이다. 불과 하루 만에 해당 이름 사용을 반대하는 도민청원에는 2만 명이 넘는 동의가 몰렸고, 경기도는 서둘러 “명칭이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하며 수습에 나섰다.
논란의 핵심은 ‘평화’라는 단어에 대한 해석이었다. 일부 주민들은 해당 명칭이 접경지역의 정세나 지역 정체성과는 맞지 않는다는 점과 북한과의 관계를 지나치게 부각시킨다는 우려를 보였다. 여기에 부동산 가치 하락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명칭 하나가 지역 주민들의 정체성과 경제적 이해관계에 대한 첨예한 갈등으로 확산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이름을 정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둘러싼 논쟁이 얼마나 복잡한 이해관계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자, 분도문제가 가져올 사회적·경제적 파급 효과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축소판 속 불균형
경기도는 흔히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 불린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남과 북의 온도 차는 굉장하다. 남부 지역은 서울의 영향력 아래 산업과 교통, 교육 인프라가 조밀하게 연결돼 있는 반면, 북부 지역은 군사 규제와 낙후된 기반시설 속에서 늘 뒤처져 왔다. 북부 주민들에게 ‘경기도민’이라는 이름은 종종 남부 중심 행정의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었다.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을 끊어내자는 해법이 바로 '경기북부특별자치도'다.
역사와 정책, 분도의 물줄기
사실 경기 남북의 구분은 역사적으로도 오래됐다. 조선 세종 19년(1437년), 조선왕조실록에 처음으로 ‘경기남도’와 ‘경기북도’가 언급되었다. 현대에 들어 1980년대 후반부터 분도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고, 본격적인 추진력은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공약 발표 이후에 불붙었다.
2022년 6월, 김동연 당선인은 “연내에 추진기구를 구성하고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며 “임기 내 경기북부특별자치도법을 제정하겠다”고 선언했다. 2023년에는 김민철 국회의원이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같은 해 3월 염종현 경기도의회 의장이 특위 설치안을 제안하자 총 142명의 도의원이 공동 발의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106명이 남부 지역 의원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했다. 이 문제가 단지 지역 이기주의에 그치지 않고, 경기도 전체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경제 우선론과 신중론의 대두
하지만 2024년 5월, 이동환 고양시장은 “분도보다 경제 자립이 우선”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경기북부 10개 시군이 경제 동맹을 맺어 자립 기반을 다지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분도 이전에 경제 협력부터’라는 현실적 목소리로 해석되며,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논의에 신중론을 불러왔다.
여기에 서울시와 인접한 김포, 구리 등 일부 지역의 ‘서울 편입’ 논의가 더해지면서 지역 균형 발전과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고민은 한층 복잡해졌다. 특히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벚꽃이 내리면 김포가 서울이 될 것”이라는 발언을 하며 서울 편입 가능성에 무게를 실으면서, 경기도 북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경기권 내 자립’과 ‘서울권 편입’ 중 어느 길이 지역 발전에 더 이로울지에 대한 논쟁이 불궈졌다.
이처럼 경제적 기반 없이 행정 구역을 분리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분도는 경제 자립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신중론도 확산되었다.
찬성과 반대, 팽팽한 시선의 충돌
특별자치도 설치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팽팽하다. 찬성과 반대 양측 모두 나름의 논거를 가지고 있다.
찬성 측에서는 경기북부가 오랜 시간 상대적인 낙후 지역으로 분류돼 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첫째, 교통, 산업, 교육, 의료 인프라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경기남부에 비해 현저히 열악한 상황이 지속되어 왔고,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해법이 바로 ‘행정적 독립’이라는 것이다.
둘째, 광역 단위 행정 체계에서는 북부 지역의 수요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이 있다. 특별자치도로 전환되면, 지역 특성과 수요에 맞춘 정책을 보다 빠르고 유연하게 추진할 수 있고 독립적인 예산 운용을 통해 실질적인 자율성도 확보할 수 있다.
셋째, 도민의 공감대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경기도가 실시한 공론조사에서 설치 찬성률은 약 87%에 달했다. 단순한 여론조사가 아니라 숙의 과정을 거친 조사 결과라는 점에서 도민들의 인식과 지지가 상당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북부 지역은 상급종합병원이 부족하고 응급의료 접근성이 낮은 실정이다. 자치권이 강화되면 이러한 생활 밀착형 공공서비스가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다.
반면, 반대 측에서는 몇 가지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첫째, 경기도를 분할할 경우 행정의 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도 단위 정책의 중복, 행정 비용의 증가, 협력 체계의 혼선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경기북부의 낮은 재정 자립도는 또 다른 문제다. 자립 기반 없이 독립적인 자치단체로 전환될 경우, 재정 운영에 있어 중앙정부 의존도가 오히려 심화될 수 있다.
셋째, 이번 자치도 추진이 일부 정치 세력의 지역 기반 확보나 선거 전략과 맞물려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행정 개편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릴 경우, 정책의 지속성과 신뢰성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넷째, 도민 간 갈등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기남부와 북부 간 분리 논의는 공공기관 이전, 예산 배분, 상징성 확보 등을 둘러싼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지역 간 불필요한 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 수 있다.
낙후가 아닌 가능성의 땅, 경기북부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이야기할 때 흔히 ‘낙후 지역의 균형 발전’이라는 말부터 꺼낸다. 물론 교통, 산업, 교육 등에서의 격차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경기북부는 단지 지원이 필요한 ‘그림자의 지역’이 아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경기북부를 수도권의 끝자락, 접경의 땅, 개발의 후순위 정도로만 생각해 왔다. 그러나 실상 이곳은 수려한 자연환경, 넓은 국토, 잠재력 있는 인재와 산업 기반까지 고루 갖춘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제대로만 설계된다면 북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가능성의 지뢰창고’(물론 좋은 의미에서)다.
‘분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는 그동안 남의 그림자 속에 가려졌던 이 지역이 자신만의 이름을 걸고 미래를 설계하겠다는 선언이다. 더 이상 “서울에서 좀 먼 동네”가 아니라, 스스로 주인공이 되겠다는 지역의 선택이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도와줄까’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를 상상할 시간이다.
'분도'라는 행정 구분에 갇혀 지역을 쪼갠다는 인식이 아닌, 잠재력과 가능성으로 가득 찬 경기북부를 '보물창고'로 바라보며 이를 지역 주민과 국민들에게 어떻게 선물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경기북부,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동네다. 이제는 모두가 그 가능성을 제대로 봐줄 차례다.
이어지는 편에서는 사회 구조 속에서 세대와 계층 간 직장 내 갈등을 다룬다.
고은영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