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이념갈등- 자주 듣는 정치분야 팟캐스트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저희 아버지는 아직도 코로나 백신은 효과 없고 위험한 정부의 음모'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댓글에는 ‘답이 없다’, ‘그냥 포기해라’, ‘틀딱은 바뀌지 않는다’ 같은 반응이 줄줄이 달렸다. 누군가를 설득하기보다 ‘내 편’ 안에서 분노를 공유하는 풍경. 객관적 사실보다 내가 믿는 믿음을 더 중시하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 이념 갈등의 단면이다. ■ 잘못된 확신이 사실을 이기다. 스웨덴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의 저서 ‘팩트풀니스(Factfulness)’에는 흥미로운 실험이 등장한다. 그는 개발도상국의 교육 수준, 아동 사망률, 경제 성장률 등 데이터를 질문으로 제시하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정답을 맞혀보라고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경제 전문가, 정치인, 심지어 교수들보다 침팬지가 더 많은 정답을 맞혔다. 로슬링은 말한다. “문제는 무지가 아니라, 잘못된 확신이다.” 우리는 이미 ‘사실’을 알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이 믿음은 우리 사회의 공공 영역에서도 사실을 압도한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에 대한 통계 지표는 복잡하고 다
미국 한 신문사는 야근 기자 대신 AI가 밤새 스포츠 경기 결과를 정리하는 ‘로봇 기자’를 운영한다. 직원들이 퇴근한 뒤에도 기사는 새벽에 자동으로 발행된다. 아침 출근한 기자가 보는 건 자신이 쓰지도 않은 기사다. AI는 피곤하지 않고 커피도 필요 없다. 심지어 휴가도, 퇴근도 없다. 그런 존재와 경쟁한다는 것은 새로운 차원의 피로다. 카페 바리스타는 주문을 성실히 처리한 키오스크 옆에서 커피만 내리고, 콜센터 상담원은 음성봇이 50% 이상의 민원을 응대한 이후 ‘예외 케이스’만을 처리한다. 사람은 점점 보조인력으로 밀려난다. 효율과 비용 절감이라는 이름으로 기계는 일터의 중앙으로 들어왔고 인간은 그 주변부로 이동했다. ■ AI 시대, 노동의 의미 2023년, 카카오는 ‘AI 경영 효율화’ 정책을 내세우며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AI 개발 인력을 중심으로 재편하면서 계약직과 일부 지원부서 인력의 재계약을 중단했다. 내부 게시판에는 “AI가 사람을 평가한다”, “사람이 일하던 자리를 AI가 대신한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IT 기업 내부에서조차 ‘기술과 사람의 공존’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였다. 한국고용정보원(KEIS) 보고서에 따르면 AI와 자동화 확산으
4편 교육분쟁 정책과 입시, 그리고 부모와 학생 간 기대가 섞여있는 학교는 작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제도의 변화 속에서 공정성과 신뢰가 시험대에 오르고,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정권 바뀔 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타야 한다. 이런 교육 갈등은 단순한 제도 문제가 아니라 세대와 계층, 사회적 자본이 엮인 복합적 갈등이다. 목동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서 있으면 가끔 이런 대화가 오간다. “언니네는 정시야, 수시야?” “우리아이는 아직 중1인데 뭘 벌써부터 그런걸 생각해요!” 웃으며 대답했지만 내심 불안했는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황급히 ‘정시 확대’, ‘수시 축소’를 검색해본다. 아이보다 엄마인 내가 정책 변화에 더 예민해졌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제도를 좇다 보면 너무 복잡해서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이러한 불안의 근원은 단순히 제도가 복잡해서가 아니다. 끊임없이 바뀌는 제도 속에서 혹시나 내가 무지하여 아이를 제대로 고등학교, 혹은 대학에 보내지 못했다는 불공정한 결과를 초래할까봐 불안은 커져만 간다. 정시의 공정, 그러나 그늘도 크다 2023년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학부모의 63%가 “정시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정시의 '순수한
3편 계층분쟁 주말 내내 조용하던 SNS의 각종 단톡방은 월요일 8시 이후로 폭발하기 시작한다. 상사들의 루틴인 '좋은 아침입니다~' 멘트를 시작으로 업무 지시가 쏟아지고 쉴새 없이 하루 일정이 올라온다. 직장 내에서 SNS를 활용한 소통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도구가 되었다. 그런데 혹시 단톡방에서 '조용히 나가기' 기능을 써 탈출한 직원을 실수인줄 알고 다시 초대하거나, 말풍선에 달 수 있는 '하트', '좋아요', '체크' 등 공감 표시만 남기는 직원이 이상하게 여겨진다면 당신은 분명 꼰대 상사이다. MZ세대가 주류 노동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직장은 ‘조용한 세대 전쟁’의 현장이 됐다. ⸻ ■ 공정을 말하는 MZ, 충성을 말하는 X세대 MZ세대는 더 이상 회사가 내 인생을 책임져주거나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일은 생계의 수단이자 자아 실현의 통로는 될 수 있지만, 결코 희생의 무대는 아니다. “열심히 하면 언젠가 보상받는다”는 믿음은 이미 깨졌다. 대신 ‘공정한 평가’와 ‘투명한 보상’을 요구한다. 반면 기성세대에게 회사와 직장동료는 ‘가정과 가족’이었다. 상사의 집 이삿날에는 다같이 가서 짐을 날라주고 같이 짜장면을 먹는 게 당연했다. 상
환경문제가 개인과 사회의 이해 충돌을 보여주었다면, 지역분쟁은 행정 결정과 주민 이해관계가 맞부딪히는 현장이다. 정책과 주민 의견이 충돌해서 찬반논쟁이 일어나면, 정부 신뢰는 약해지고 정책의 실행 가능성이 위협받을 수 있으며 결국 정부 실패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2편 지역분쟁 2024년 5월, 경기도를 뜨겁게 달군 사건이 있었다. 경기도가 ‘경기북부특별자치도’의 새로운 명칭으로 ‘평화누리특별자치도’를 발표하자 비판 여론과 반대 청원이 쏟아진 것이다. 불과 하루 만에 해당 이름 사용을 반대하는 도민청원에는 2만 명이 넘는 동의가 몰렸고, 경기도는 서둘러 “명칭이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하며 수습에 나섰다. 논란의 핵심은 ‘평화’라는 단어에 대한 해석이었다. 일부 주민들은 해당 명칭이 접경지역의 정세나 지역 정체성과는 맞지 않는다는 점과 북한과의 관계를 지나치게 부각시킨다는 우려를 보였다. 여기에 부동산 가치 하락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명칭 하나가 지역 주민들의 정체성과 경제적 이해관계에 대한 첨예한 갈등으로 확산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이름을 정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둘러싼 논쟁이 얼마나 복잡한 이해관계 위에 놓여 있는지
〈갈등의 사회, 공공분쟁의 현장을 가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끊임없이 갈등한다. 카페에서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빨대를 쓸 수 있느냐 없느냐, 택배기사의 분류작업을 누가 책임질 것이냐, 같은 경기도민 사이에서 북부와 남부가 갈라서야 하느냐 등등. 일상과 맞닿은 사안에서 국가적 의제에 이르기까지 갈등은 크고 작게 우리 삶의 전면에 등장한다. 공공분쟁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다. 정책, 자원, 가치관이 얽히며 집단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상이다. 그래서 갈등은 피로감과 불신을 낳기도 하지만 문제를 드러내고 변화를 촉진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번 연재에서는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여섯 가지 공공분쟁―환경, 노동, 지역, 계층, 교육, 이념분쟁을 살펴본다. 각 분쟁의 배경과 쟁점, 그리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1편 환경분쟁 “작은 불편이 큰 변화를 만든다.” 일회용컵 반납과 플라스틱 사용 금지가 단순한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사회적 논쟁으로 이어지는 지금, 환경을 둘러싼 공익과 사익의 충돌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플라스틱 빨대에서 다회용컵까지: 불편을 감수할 것인가, 지구를 지킬 것인가〉 유난히도 더웠던 이번 여름, 아이스아메리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