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글로벌 산업 전반에 걸쳐 인공지능(AI) 도입을 이유로 한 대규모 해고 바람이 불고 있다. 빅테크부터 항공사, 핀테크, 교육 플랫폼까지 산업을 가리지 않고 감원 소식이 이어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AI가 진짜 이유가 아니다”라며 ‘AI 해고론’에 대한 회의론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 컨설팅 기업 액센츄어(Accenture)는 지난주 “AI 관련 재교육에 실패한 직원들을 신속히 퇴출한다”며 구조조정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항공사 루프트한자(Lufthansa) 역시 AI 기반 효율화를 이유로 2030년까지 4천명 감축 계획을 내놨다. CRM(고객관계관리) 소프트웨어 기업 세일즈포스(Salesforce)는 “AI가 업무의 50%를 대체할 수 있다”며 고객지원 인력 4천명 해고를 단행했다.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Klarna)는 AI 도입 이후 전체 인력의 40%를 감축했고, 언어 학습 플랫폼 듀오링고(Duolingo)는 계약직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AI로 대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처럼 AI가 기업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등장하면서, AI 기술 발전이 효율성 향상보다는 인건비 절감을 위한 방패막이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파비안 스테파니 옥스퍼드 인터넷연구소 교수는 CNBC 인터뷰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해고는 진정한 생산성 향상 때문이라 보기 어렵다”며 “기업들이 AI를 ‘좋은 핑계’로 삼아 감원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들은 AI를 활용한 혁신 이미지를 내세워 경쟁력을 강조하면서, 사실상 팬데믹 기간의 과잉 고용을 정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클라르나와 듀오링고 등은 코로나19 기간 폭발적 성장세에 맞춰 ‘과잉 채용’을 단행했던 대표 기업들로 꼽힌다. 스테파니 교수는 “기업들은 팬데믹 시절의 잘못된 인력 판단을 인정하는 대신 ‘AI 때문’이라며 해고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달리 실제 데이터는 AI가 대규모 실업을 초래하고 있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뉴욕-뉴저지 북부 지역의 서비스업과 제조업 기업들 중 AI를 해고의 직접적 이유로 보고한 기업은 전체의 1%에 불과했다. 반면, 서비스 기업의 35%는 AI를 활용한 인력 재교육을 실시했고, 11%는 AI 도입으로 오히려 신규 채용을 늘렸다고 응답했다. 이는 AI가 ‘고용 파괴자’보다는 생산성 향상 및 업무 재배치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테파니 교수 역시 “AI로 인한 대규모 기술적 실업의 증거는 거의 없다”며 “AI가 일부 직무를 대체할 수는 있지만, 구조적 실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본질이 AI 기술 발전보다 기업의 경영 전략 변화에 있다고 본다. AI는 생산성 혁신을 위한 도구지만, 기업들은 이를 인력 효율화와 비용 절감의 수단으로 단기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장-크리스토프 부글레 어센틱닷리(Authentic.ly) 창업자는 “대기업들이 주장하는 것만큼 AI 도입 속도는 빠르지 않다”며 “보안·비용 문제로 AI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이번 ‘AI 해고 논란’은 기술이 아닌 기업의 선택과 책임의 문제로 귀결된다. AI는 일자리를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기업이 인력을 대하는 방식의 변화를 드러내는 거울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기업 모두 AI 시대의 고용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일자리 수를 줄이거나 늘리는 논의보다, AI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재교육(Re-skilling)·직무전환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전문가들은 “AI 도입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은 불가피하지만, 이를 인력 감축이 아닌 새로운 고용 기회 창출의 계기로 전환해야 한다”며 “정부는 기업의 AI 전환 과정에서 고용 유지를 위한 가이드라인과 사회안전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