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편 계층분쟁
주말 내내 조용하던 SNS의 각종 단톡방은 월요일 8시 이후로 폭발하기 시작한다. 상사들의 루틴인 '좋은 아침입니다~' 멘트를 시작으로 업무 지시가 쏟아지고 쉴새 없이 하루 일정이 올라온다. 직장 내에서 SNS를 활용한 소통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도구가 되었다.
그런데 혹시 단톡방에서 '조용히 나가기' 기능을 써 탈출한 직원을 실수인줄 알고 다시 초대하거나, 말풍선에 달 수 있는 '하트', '좋아요', '체크' 등 공감 표시만 남기는 직원이 이상하게 여겨진다면 당신은 분명 꼰대 상사이다.
MZ세대가 주류 노동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직장은 ‘조용한 세대 전쟁’의 현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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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을 말하는 MZ, 충성을 말하는 X세대
MZ세대는 더 이상 회사가 내 인생을 책임져주거나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일은 생계의 수단이자 자아 실현의 통로는 될 수 있지만, 결코 희생의 무대는 아니다. “열심히 하면 언젠가 보상받는다”는 믿음은 이미 깨졌다. 대신 ‘공정한 평가’와 ‘투명한 보상’을 요구한다.
반면 기성세대에게 회사와 직장동료는 ‘가정과 가족’이었다. 상사의 집 이삿날에는 다같이 가서 짐을 날라주고 같이 짜장면을 먹는 게 당연했다. 상사가 퇴근하기 전에는 밤 11시고 12시고 불이 꺼지지 않았던 사무실,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라 믿었던 시절, 그 속에서 만들어진 ‘충성의 문화’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잡코리아가 2023년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81%가 ‘세대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그 원인은 ‘업무 방식 차이’(36%), ‘커뮤니케이션 문제’(28%), ‘권위적인 태도’(19%) 순이었다.
■ ‘MZ노조’라는 새로운 목소리
2021년 카카오 노조 ‘크루유니언’의 등장은 이 변화를 상징한다. 그들은 임금 인상보다 공정한 평가와 조직문화 개선을 요구했다. 인사와 경영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노동 존중과 책임 경영을 요구하는 집단적 행동을 주도했다. ‘모든 크루가 존중 받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카카오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 이라는 것이다.
네이버, 쿠팡 등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졌다. 전통 노조가 강조하던 ‘노동자의 단결’보다, ‘공정한 시스템’과 ‘투명한 경영’을 요구한다. 나아가 공동 집회를 열어 업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도 한다.
한 노조 관계자는 “우리는 구호보다 보고서를 잘 쓰고, 싸움보다 설득을 택한다”고 했다.이른바 ‘MZ형 노동운동’은 더 이상 젊은 세대의 변덕이 아니라 ‘조직의 새 언어’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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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갈등의 본질은 ‘언어의 단절’
직장 내 세대갈등은 언어의 문제다. 같은 단어로 대화를 하지만 다른 문법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서는 “공정”은 단어 하나지만 각 주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고 한다. MZ세대는 과정의 공정성을 강조하고 있어 절차적 투명성이나 의사결정 구조의 평등성 등을 민감하게 보는 반면, 기성 세대는 어떤 결과가 나왔을 때 보상과 몫, 즉 분배 공정성과 결과 공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응답했다(청년의 공정한 사회진출을 위한 방안 연구 2023).
같은 단어지만 두 세대가 가진 내부 지식사전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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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 리믹스’의 시대 — 공존이 아니라 조합의 문제
직장은 ‘다른 시간대에 산 사람들’의 협업 공간이다. 그래서 단순한 세대 통합이 아니라, ‘세대 리믹스’ 가 필요하다.
첫째, 세대별 강점을 프로젝트 단위로 재조합하자. MZ의 실행력과 X세대의 문제 해결력은 경쟁이 아니라 시너지다.
둘째, ‘나이’가 아니라 ‘프로젝트 주도력’으로 리더십을 재편하자. 27살이 44살 팀장을 이끄는 게 이상하지 않은 구조가 필요하다.
셋째, 피드백은 ‘쌍방향 ’이 되어야 한다. 실제 기업에서 전방위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360도 평가시스템을 활용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넷째, ‘공정’을 수치화하자. 인사·성과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불신이 줄어든다.
조직 문화도 마치 빵 굽기와 같다. 기성세대의 경험과 노하우는 밀가루 같은 기본 재료이고, MZ세대의 감각과 실행력은 발효종 같은 생동감 있는 요소다. 둘을 따로 쓰면 딱딱한 빵이나 발효가 너무 과한 반죽만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적절히 섞어서 반죽하고 숙성시키면 부드럽고 풍미 있는 빵이 된다. 세대 리믹스란, 단순히 재료를 섞는 것이 아니라 균형 있게 배합하고 함께 숙성시키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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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꼰대의 시대가 저문 뒤- 갈등 속 실험실
세대 갈등은 싸움이 아니라 번역의 문제다.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때, 직장은 전쟁터가 아닌 협력의 공간이 된다.
꼰대의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 필요한 건 ‘공감의 리더십’이 아니라 ‘세대 리믹스의 감각’이다. 공정과 존중이 함께하는 직장은 세대가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문화의 총합이다. “조직 혁신” 이라고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 없이 사람-사람 간의 공감과 언어의 격차를 좁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음편에서는 또다른 개인, 사회간 충돌인 교육분쟁으로 시선을 옮겨 정책변화가 학생과 부모에게 주는 공정성과 불안을 다룬다.
고은영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