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김재억 기자 | 대한민국의 가구 지형도가 임계점을 넘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기준 1인 가구 비중은 36.1%, 가구 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800만 가구(804만5천)를 돌파했다. 세 집 건너 한 집이 1인 가구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양적 팽창 이면의 질적 분화다.
최근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이자 '트렌드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인 권정윤 박사가 제시한 ‘1.5가구(1.5 Households)’는 이제 단순한 주거 형태를 넘어, 초개인화 시대에 최적화된 새로운 생존 전략이자 비즈니스 기회로 부상하고 있다.
1.5가구의 핵심은 ‘연결되지만 얽매이지 않는 전략적 연대’에 있다. 과거의 공동체가 끈끈한 정(情)과 희생을 전제로 했다면, 1.5가구는 철저히 합리적 계약과 ‘느슨한 연대’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SK디앤디의 ‘에피소드’나 MGRV의 ‘맹그로브’ 같은 코리빙 하우스의 흥행은 이를 증명한다. 이들은 완벽하게 독립된 사적 공간을 사수하면서도, 라운지와 커뮤니티 공간을 통해 ‘필요할 때만’ 연결되는 방식을 택한다. 룸메이트 매칭 앱인 ‘코지메이트’나 ‘룸프렌즈’에서 이용자들이 취향보다 청소 주기나 소음 민감도 같은 ‘생활 데이터’를 우선시하는 현상 또한 고립의 외로움은 덜어내되 개인의 주권은 절대 침해받지 않으려는 영리한 타협의 산물이다.
이러한 ‘1.5인분 라이프’는 다인 가구 내부로까지 전이되고 있다. 가족이라는 관성 대신 집 안에서도 ‘따로 똑같이’의 원칙이 지배한다.
LX지인이나 일룸(캐스터네츠) 같은 리빙 브랜드들이 중문(中門)이나 파티션 등 공간 분리 솔루션과 1인 전용 가구 라인업을 강화하는 이유다. 거실의 대형 소파가 사라진 자리에 각자의 취향이 반영된 1인용 체어가 들어서고, 부부 사이에서도 수면 독립을 위한 싱글 침대 배치는 일상이 되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토스나 뱅크샐러드의 모임 통장을 활용해 생활비를 각출하고, 가사 분담을 데이터로 결산하는 ‘가사 경영’ 시스템이 정착 중이다. 이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고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려는 합리적인 대안이다.
우리가 1.5가구라는 변종에 열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치솟는 주거비라는 경제적 ‘부담’과 단절된 삶이 주는 정서적 ‘고립’ 사이에서 찾아낸 최적의 합의점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코페런팅(Co-parenting)’과 일본의 ‘층간 가족(層間 家族)’은 권정윤 박사가 제시한 ‘1.5가구’의 개념을 뒷받침하는 글로벌 차원의 실질적인 사례들이다.
미국에서 확산 중인 코페런팅은 반드시 '부부'가 아니더라도, 오로지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목적'으로 결합한 관계를 의미한다. 즉 로맨틱한 관계나 혼인 신고 없이, 육아라는 명확한 공동의 목표를 위해 주거를 공유하거나 인근에 살며 협력하는 형태다.
일본의 층간 가족은 한 건물 내에서 층을 달리하여 거주하는 부모와 자녀 세대를 뜻하며, 최근에는 생판 남이지만 가족처럼 지내는 ‘이웃 가족’ 개념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한집에 사는 '합가(合家)'도 아니고, 멀리 떨어져 사는 '분가'도 아닌 형태다. 같은 빌라의 1층과 3층에 살거나, 마당을 공유하는 별채에 사는 식이다.
특히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을 ‘0.5’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은 신세계까사의 ‘몽스’나 반려동물 전용 가구 브랜드 ‘하밋’ 같은 새로운 시장의 팽창을 이끌고 있다.
미래 비즈니스의 승패는 이 정교한 ‘적정 거리’를 얼마나 매끄럽게 조율해 주느냐에 달렸다. 기성세대의 눈에는 이기적인 파편화로 보일지 모르나, 이는 타인과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요즘 세대가 발굴해낸 관계의 최신 버전이다.
주택 정책부터 의료 결정권, 상속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4인 가구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제도의 공백을 메워야 할 때다. 유연하게 연결되면서도 깔끔하게 독립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800만 1인 가구 시대를 맞이한 대한민국이 풀어야 할 당면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