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의 지형도가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서민 주거의 사다리 역할을 해온 ‘전세’가 급격히 자취를 감추는 대신, 매달 생돈이 나가는 ‘월세’가 그 자리를 빠르게 잠식 중이다. 서울 아파트 임대차 거래 2건 중 1건이 월세로 채워지는 이른바 ‘월세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 역대 최고치 갈아치운 월세 비중…전세 거래는 ‘급락’
3월31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주택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월세 시장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49.8%를 기록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서울 아파트 기준 역대 최고 수준이다. 2년 전인 2024년 2월(41.6%)과 비교하면 무려 8.2%포인트나 치솟은 수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거래량의 질적 하락이다. 지난달 서울 전체 전세 거래량은 2만 2,542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9%나 급감했다. 최근 5년 평균치와 비교하면 무려 32.9%나 적은 수준이다. 반면 월세 거래량은 소폭 감소에 그치며 상대적인 비중을 키웠다. 이미 전국 아파트 월세 비중은 50.6%로 절반을 넘어섰고, 서울 역시 현 추세라면 다음 달 통계에서 50% 선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된다.
■ 왜 ‘월세’인가?…금리보다 무서운 ‘구조적 족쇄’
과거 월세화 현상이 고금리에 따른 세입자의 자발적 선택(전세대출 이자보다 월세가 싼 경우)이었다면, 최근의 흐름은 '공급 압박에 의한 강제적 전환’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금융 여건 변화가 아닌, 정부의 규제와 제도적 환경이 만들어낸 구조적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김은선 직방 빅데이터랩실 랩장은 “신규 분양 단지나 입주 초기 단지에서 소유권 이전 등기 전 전세대출 제한 등이 시행되면서, 집주인들이 전세를 놓아 잔금을 치르는 방식이 어려워졌다”며 “자금 조달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월세나 반전세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수도권 주요 지역에 지정된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실거주 의무도 전세 매물 잠김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집주인이 직접 들어가 살아야 하니 시장에 나올 임대 매물 자체가 씨가 마르는 구조다.
■ 전세 사기 포비아와 대출 규제의 ‘콜라보’
빌라와 오피스텔을 덮쳤던 전세 사기 여파도 아파트 시장의 월세화를 가속하는 기폭제가 됐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가 세입자들을 안전한 월세 시장으로 떠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정부의 전방위적인 대출 규제는 전세를 얻으려는 세입자들의 발을 묶고 있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반적인 전세 대출 위축과 매물 감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아파트 시장의 월세화는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장기적 추세”라고 전망했다.
■ 다가오는 ‘임대료 도미노 상승’…서민 주거비 부담 ‘비상’
문제는 이 같은 월세화가 임대료 상승 압박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매물이 부족한 상태에서 수요가 월세로 몰리면 월세 가격이 오르고, 이는 다시 전셋값을 밀어 올리는 악순환을 낳는다.
고하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수도권은 실거주 의무로 인해 임대차 매물 공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전세에서 월세로 이동하는 흐름 속에서 올해 서울 및 수도권의 전월세 가격은 모두 강한 상승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세 종말’의 가속화는 무주택 서민들의 가처분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산 형성의 징검다리였던 전세 제도가 흔들리면서,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보다 정교한 월세 지원책과 임대 주택 공급 확대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