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대한민국 암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 '희귀암' 중 하나로 여겨졌던 췌장암이 이제는 우리 국민의 생명을 가장 위협하는 8대 암으로 올라섰다. 4월15일 보건복지부와 국가암정보센터의 최신 지표를 분석한 결과, 췌장암 신규 환자 수는 2015년 6,509명에서 2023년 9,748명으로 8년 사이 무려 50%나 폭증했다.
이러한 추세라면 연간 신규 환자 1만명 돌파는 시간문제다. 성별 발생 추이를 보면 남성(4,925명)과 여성(4,823명)이 거의 대등한 수치를 보여 남녀 모두에게 치명적인 질환임이 입증됐다. 특히 인구 고령화와 맞물려 60대(28.3%), 70대(28.1%), 80대 이상(24.3%) 순으로 환자가 분포되어 있어, 60대 이상의 고령층이 전체 환자의 약 80%를 차지하는 '노인형 암'의 특성을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
■ 왜 췌장암만 유독 생존율이 낮은가? '해부학적 사각지대'
암 치료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위암(78.6%)이나 대장암(74.3%)의 5년 생존율이 70~80%대에 육박하고 있지만, 췌장암은 여전히 17%라는 참혹한 성적표에 머물러 있다. 의학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췌장의 독특한 '해부학적 위치'에서 찾는다.
췌장은 위장 뒤쪽, 복막 깊숙한 곳에 가로로 누워 있다. 일반적인 위·대장 내시경으로는 그 실체를 들여다볼 수 없다. 또한 췌장 주변에는 간문맥, 복강동맥 등 우리 몸의 핵심 혈관들이 밀집해 있다. 암세포가 조금만 자라도 주변 장기와 혈관으로의 침범이 매우 빨라, 실제 환자의 절반 이상이 진단 시점에 이미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원격 전이 또는 국소 진행)로 병원을 찾는다.
■ 몸이 보내는 6가지 미세 신호… "등 통증과 당뇨를 주목하라"
'침묵의 살인자'라는 별칭답게 초기에는 증상이 거의 없다. 하지만 병세가 진행됨에 따라 몸은 분명히 이상 징후를 내보낸다. 전문가들이 꼽는 핵심 신호는 다음과 같다.
- 복부 및 등 통증: 명치 부근의 통증이 흔하며, 췌장이 등 쪽에 가깝다 보니 허리 통증으로 오인해 정형외과를 전전하는 경우도 많다.
- 황달: 종양이 담관을 눌러 담즙 흐름을 막을 때 발생한다. 소변 색이 진한 갈색으로 변하거나 눈동자가 노랗게 변한다면 즉시 검사가 필요하다.
- 원인 불명의 체중 감소: 뚜렷한 이유 없이 수개월 내 체중의 10% 이상이 빠진다면 경계해야 한다.
- 갑작스러운 당뇨 발생: 가족력이 없는데 40세 이후 갑자기 당뇨병 진단을 받거나, 기존 당뇨 환자가 혈당 조절이 급격히 안 된다면 췌장암에 의한 인슐린 분비 장애를 의심해봐야 한다.
- 소화 장애 및 식욕 저하: 췌장액 분비가 원활하지 않아 지방 소화가 안 되고 배변 습관이 변할 수 있다.
■ "수술만 할 수 있다면"…수술 환자 5년 생존율, 전체 평균의 2~3배
췌장암 전체 환자의 5년 생존율은 약 17%에 머물러 있지만, '수술이 가능했던 환자'들로 범위를 좁히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의학계에 따르면 조기에 발견되어 근치적 절제술을 받은 환자의 5년 생존율은 약 30~40%까지 올라간다. 특히 암세포가 췌장 내에만 국한된 '국소 단계'에서 수술을 받을 경우 생존율은 50%를 상회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체 췌장암 환자 중 수술이 가능한 상태에서 발견되는 경우는 약 20% 내외에 불과하다. 나머지 80%는 암이 이미 주요 혈관을 침범했거나(국소 진행형), 간이나 폐 등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원격 전이)에서 진단된다.
■ 치료 성적 가르는 '항암 후 수술' 전략의 승리
최근에는 수술 기법의 정교화와 더불어 '선행 항암요법(Neoadjuvant Therapy)'이 수술 후 생존율을 끌어올리는 일등 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던 '경계성 절제 가능' 환자들에게 강력한 복합 항암치료를 먼저 시행한 뒤, 종양의 크기를 줄여 수술을 집도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수술 성공률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전이 세포까지 사멸시켜 수술 후 재발률을 현저히 낮추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실제로 최근 임상 데이터에 따르면, 선행 항암치료 후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환자들의 생존 기간은 처음부터 수술이 가능했던 환자들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좋은강안병원 간담췌간이식외과 양광호 과장은 "췌장암은 수술 후에도 재발 위험이 높기 때문에 수술 자체 못지않게 수술 전후의 체계적인 항암치료 관리가 생존율 향상의 핵심"이라며, "과거와 달리 4기 환자라 하더라도 항암 반응이 좋을 경우 수술적 절제를 시도해 생존 기간을 획기적으로 연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 "예방이 곧 경제적 생존"…위험 요인 관리 로드맵
췌장암은 막대한 치료비와 긴 투병 기간으로 인해 가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따라서 가장 효율적인 대응은 '위험 요인 차단'이다.
금연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췌장암 발생 위험이 최대 5배 높다. 고지방, 고칼로리 식단을 피하고 적정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비만은 인슐린 저항성을 높여 췌장에 과부하를 준다. 당뇨병 환자, 만성 췌장염 환자, 그리고 췌장암 가족력이 있는 경우 일반인보다 발생 확률이 수십 배까지 높아지므로 1년에 한 번은 복부 CT나 MRI 등 정밀 검진을 권고한다.
양광호 과장은 "췌장암은 결코 가벼운 질환이 아니지만, 정기적인 검진과 생활 습관 관리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며 "사소한 소화 불편이나 갑작스러운 체중 변화를 나이 탓으로 돌리지 말고 전문가의 진단을 받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