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路 산책] 포털 담장 넘은 'K-구독'의 반란

  • 등록 2026.02.05 15:35:16
크게보기

네이버·카카오 ‘脫포털’ 가속화…뉴스구독 서비스 집중
포털 의존도 낮추고 ‘유료 멤버십’ 강화…데이터주권 강화

 

 

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미국 저널리즘의 심장부로 불리는 워싱턴포스트(WP)가 결국 항복 선언을 했다. 전체 인력의 3분의 1을 내보내고, 수십 년간 독자들의 영혼을 울렸던 스포츠 섹션을 아예 없애기로 한 것이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인수한 지 13년, '디지털 퍼스트'를 외치며 부활을 꿈꿨던 이 유서깊은 매체의 결단은 생성형 AI가 초래한 '제로 클릭(Zero-click)'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조종(弔鐘)과도 같다.

 

■ '제로 클릭'의 습격 "독자를 가로채는 AI 검색"

 

WP의 맷 머레이 편집국장이 밝힌 지표는 서늘하다. 지난 3년간 유입 검색 트래픽이 절반으로 증발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용자들이 이제 정보를 얻기 위해 뉴스 사이트를 클릭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글의 AI 검색이나 챗GPT, 퍼플렉시티는 질문에 대해 웹상의 기사들을 요약해 즉각적인 답을 내놓는다.

 

사용자가 원문 기사 링크를 누를 필요가 없어지는 '제로 클릭 검색'의 확산은 언론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스포츠 뉴스는 그 최전선에서 희생됐다. 경기 결과나 단순 통계는 AI가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요약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WP의 자부심이었던 '야구의 시인' 토마스 보스웰이 묘사하던 문학적 저널리즘은 효율성이라는 차가운 칼날 앞에 설 자리를 잃었다.

 

지난 2월4일 NBA에서 "댈러스 매버릭스 소속의 앤서니 데이비스,  워싱턴 위저즈 이적"이라는 지역 최대 뉴스가 터진 날, 정작 WP에서 관련 심층 분석을 볼 수 없었던 풍경은 지역 저널리즘의 종말을 상징하는 비극적 단면이다.

 

■ WP의 비명은 남의 일이 아니다: K-언론의 '데이터 성벽' 쌓기

 

이러한 미디어 잔혹사는 네이버와 카카오라는 거대 플랫폼 환경에 갇혀 있는 한국 언론사들에게도 거울 같은 미래다. 국내 매체들은 플랫폼이 AI 검색 서비스인 '큐(Cue:)' 등을 통해 뉴스 소비 방식을 재정의하기 시작하자, 트래픽 유입에만 목을 매던 기존 문법을 버리고 처절한 '자산화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포털 담장 밖으로 독자를 끌어내는 '내 집 짓기'다. 주요 매체들은 포털에 무료로 풀지 않는 독점 콘텐츠를 앞세워 유료 멤버십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AI가 요약할 수 있는 범용 정보 대신, 로그인한 독자에게만 제공하는 '심층 분석과 유료 데이터'를 담보로 삼는다. 포털의 검색 트래픽이 끊기더라도 직접 찾아오는 '충성 독자(Log-in Wall)'를 확보해 데이터 주권을 되찾겠다는 복안이다.

 

동시에 뉴스레터 서비스를 통해 플랫폼 권력을 우회하는 '다이렉트 저널리즘'도 강화하고 있다. 알고리즘에 휘둘리지 않고 독자의 메일함으로 직접 찾아가는 방식은 AI 답변 엔진이 가로채기 힘든 독자와의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된다. 아울러 한국신문협회 등을 중심으로 빅테크 기업을 향해 '뉴스 저작권료 지급'을 강력히 요구하는 투쟁 역시, 콘텐츠 가치를 정당하게 보상받아 생존 기반을 마련하려는 절박한 시도다.

 

가장 선도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은 중앙일보의 ‘더중앙플러스’다. 유료화 선언 이후 재테크, 교육, 심층 인터뷰 등 독자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솔루션’ 중심의 콘텐츠로 2년 만에 유료 가입자 20만 명을 돌파했다. 조선일보 역시 자사 플랫폼 전략 ‘아크(Ark)’를 통해 로그인 독자 60만명 이상을 확보하며 독보적인 팬덤을 구축했다. 이는 AI 검색이 기사 내용을 요약하더라도, 원문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의 승리다.

 

■ 글로벌 정보망의 붕괴와 민주주의의 후퇴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해외 지국도 덮쳤다. WP는 전 세계 지국을 절반으로 줄이며 글로벌 뉴스의 허브 역할을 포기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격동의 중동 지국이 폐쇄된 자리는 이제 현지 소식을 재가공하는 '책상 위의 AI'가 대신하게 될 것이다. 현장을 발로 뛰며 권위주의 정부에 맞서 진실을 전하던 외신 기자의 자리는 그렇게 사라지고 있다.

 

해외 지국 기자들이 베이조스에게 "현장 취재의 권위는 결코 복제될 수 없다"고 호소했으나, 경영진은 "우리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될 수는 없다"고 응답했다. 이는 수익이 나지 않는 '진실의 수호자' 역할을 내려놓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 저널리즘의 미래, 그럼에도 인간의 '시선'은 남는다

 

WP의 사례와 한국 언론의 대응은 한 지점으로 수렴한다. “AI가 요약할 수 없는 가치를 누가 더 많이 생산하는가”이다. '야구의 시인'이 사라진 자리를 메울 수 있는 것은 AI의 매끄러운 문장이 아니라, 현장의 땀방울이 섞인 인간의 통찰과 플랫폼에 귀속되지 않는 독창적인 브랜드 파워다.

 

AI는 땀 냄새 나는 라커룸에 들어갈 수 없고, 포화가 빗발치는 전장에서 눈물을 흘릴 수 없다. 저널리즘의 미래는 기술이 주는 편리함과 인간이 제공하는 깊이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찾느냐에 달려 있다. 검색창의 답변이 아닌, 기사의 '이름'과 기자의 '시선'을 보고 찾아오는 독자를 확보하지 못한 매체에게 AI 시대의 미래는 차가운 요약본 속에 파묻히는 것뿐이다.

 

 

김은국 기자 ket@ket.kr
Copyright @경제타임스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