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억 칼럼] 3.5조 창업 예산, "실패가 파멸아닌 자산 돼야"

  • 등록 2026.02.03 15: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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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만 화려한 국가 창업 시대, 사지로 내몰리는 청년들 위한 안전망 절실
취업 준비생만 찍어내는 교실…실무 경제 소양 없는 창업 선언은 공허한 메아리

 

경제타임스 김재억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취업 중심 사회’의 종언을 고하며 ‘창업 중심 사회’로의 대전환을 선언했다.

 

AI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빠르게 대체하는 거대한 기술 문명적 전환기 속에서, ‘고용’이라는 낡은 해법 대신 ‘창업’이라는 정공법을 택한 통치권자의 결단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하지만 현장의 기술창업 연구자로서  묻고 싶다. 화려한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 뒤편에 도사린 우리 사회의 구조적 결함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 창업 예산 3.5조의 역설, ‘안전한 출구’는 있는가

 

정부는 2026년 창업 지원 예산을 역대 최대인 3조 5천억 원 규모로 쏟아부으며 아이디어 단계부터 지원하는 이른바 ‘씨앗 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정책의 수치는 화려할지언정 시장의 온도는 싸늘하다. 청년들이 창업을 망설이는 본질적인 이유는 아이디어의 부재가 아니라 ‘실패 후의 삶’에 대한 원초적 공포다.

 

한국 사회에서 창업 실패는 곧 개인의 파산이자 가정의 경제적 붕괴로 직결되는 ‘연대책임’의 굴레다. 정부가 입구 전략(Entry strategy)인 지원금 확대에만 골몰하는 사이, 실패한 혁신가를 다시 일으켜 세울 패자부활 제도와 금융 안전망이라는 출구 전략(Exit strategy)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실패의 리스크를 오롯이 개인이 짊어지는 구조에서 던지는 “도전하라”는 격려는 혁신을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사지로 떠미는 무책임한 방관일 뿐이다.

 

■ 경제 문맹을 양성하는 교육 현장의 민낯

 

더 심각한 것은 교육의 부재다. 기술창업은 공학적 지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본의 흐름을 읽고 리스크를 분산하는 능력은 창업자의 생존 필수 요건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초·중·고교와 대학은 여전히 ‘정답을 잘 맞히는 모범적 취업 준비생’을 양산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손익구조와 계약의 법적 책임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경제 문맹’들이 등 떠밀리듯 창업 시장에 나서는 현실은 참담하다. 창업 교육은 단순한 캠프나 일회성 오디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실무적인 경제 소양(Financial Literacy)을 의무화하고 리스크 관리법을 체득하게 하는 교육 패러다임의 전면적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 이벤트형 정치를 넘어선 ‘기술 생태계’의 구축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경진대회와 창업 오디션은 단기적인 ‘붐업’에는 유효할지 모른다. 그러나 창업은 일회성 화려한 공연이 아니라 길고 지난한 생존 투쟁이다.

 

우선, 단순 소상공인 창업과 고부가가치 기술창업을 구분하여 차별화된 지원 체계를 정립해야 한다. 특히 박사급 전문 인력의 원천 기술이 시장으로 흐를 수 있도록 Lab-to-Market의 연결 고리를 단단히 구축해야 한다.

 

또한 창업을 ‘취업의 대안’이 아닌 ‘가치 창출의 여정’으로 존중하는 사회적 자본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는 홍보 문구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실패해도 인생이 망하지 않는다”는 제도적 확신이 생길 때 비로소 완성된다.

 

■ 혁신의 조건: 실패가 자산이 되는 나라

 

대통령의 ‘국가 창업 시대’라는 화두가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으려면 정부는 자금 지원이라는 ‘당근’ 뒤에 숨은 제도적 결함을 직시해야 한다. 실패가 파멸이 아닌 자산이 되는 사회, 교실에서부터 경제적 자립을 배우는 교육 환경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고용의 그늘을 벗어나 창업의 태양 아래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이다.

 

실패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혁신은 국가적 도박에 불과하다.

 

 

김재억 기자 ket@k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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