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안후중 칼럼니스트 | 한 문장이 세계를 얼어붙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4월 7일 오전에 다시 확인했다. "오늘 밤 한 문명 전체가 사라져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것."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올라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 한 줄은, 21세기 외교사에서 가장 섬뜩한 문장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정치 지도자의 언어는 단순한 말이 아니다. 그것은 곧 명령이자 정책이며, 때로는 선전포고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한 문장으로 '오퍼레이션 에픽 퓨리(Operation Epic Fury)'라는 군사작전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핵 시설과 미사일 기지를 겨냥했던 전쟁은, 발전소와 교량과 사람들의 일상을 겨냥한 전쟁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석기 시대로(back to the Stone Age) 되돌려 놓겠다"는 협박은 이미 군사적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민간인에 대한 공포 조장이었다.
국제법의 언어로 이 발언을 번역하면 더욱 참담하다. 국제인도법(IHL,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 제네바협약)은 군사 목표물과 민간 시설을 엄격히 구분할 것을 명령한다. 발전소와 교량, 식수 시설은 '민간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시설'로 분류되며, 이에 대한 고의적 공격은 전쟁범죄다. 국제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아녜스 칼라마르(Agnès Callamard) 사무총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인간 생명에 대한 충격적인 잔인함과 무시"라고 규정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문명 전체'를 소멸시키겠다는 수사는 1948년 집단학살 협약이 경계하는 바로 그 '의도'의 언어와 위험할 만큼 닮아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진짜 충격은, 미국 내부에서조차 이 언어를 제어할 장치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 의원 70여 명이 수정헌법 제25조 발동을 요구했지만, 제이디 밴스(JD Vance) 부통령이 이끄는 내각이 대통령을 배신할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했다. 더 상징적인 장면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과거 트럼프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 중 한 명이었던 마저리 테일러 그린(Marjorie Taylor Greene) 前 의원이 "미국에 단 한 발의 폭탄도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문명 전체를 살해하겠다는 것은 악이자 광기"라며 25조 발동을 외친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진영의 한복판에서조차, 이 언어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었다.
정작 가장 무거운 도덕적 목소리는 바티칸에서 나왔다. 역사상 첫 미국인 교황인 레오 14세(Leo XIV, 본명 로버트 프란시스 프레보스트, Robert Francis Prevost)는 이탈리아 인근 소도시 카스텔 간돌포(Castel Gandolfo)에서 자국 대통령의 발언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도덕적 실패"라고 직격했다. 시카고 출신 교황이 같은 시카고 출신의 대통령을 이 정도로 공개 비판한 사례는, 가톨릭 외교사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이는 국제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인류 전체의 안녕에 관한 도덕적 질문"이라고 못 박았다. 법의 언어가 힘을 잃은 자리를, 도덕의 언어가 메우고 있었다.
그 사이, 한국은 말 그대로 '고래 싸움의 새우'였다. 원유 수입의 7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Hormuz) 해협이 마비되자 브렌트유는 배럴당 111달러를 돌파했고, 전쟁 전 6,300선을 넘어서던 코스피는 5,400선 아래까지 밀리며 개전 한 달 만에 13% 넘게 주저앉았다. 이 기간 사이드카가 9차례, 서킷브레이커가 1년 7개월 만에 발동되는 극심한 변동성이 시장을 휩쓸었다. 원·달러 환율은 1,510원 선을 넘나들며 17년 만의 최고치로 치솟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연료 한 방울이라도 아껴야 한다"며 범국민 에너지 절약을 호소하고, 정부가 정비 중이던 원전 6기를 조기 재가동하고, 25조 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한 것은 비상 대응이라기보다 생존 투쟁에 가까웠다. 특정 강대국의 한 문장이, 반대편 지구의 한 나라를 단숨에 흔들었다.
물론 반전은 찾아왔다. 같은 날 저녁, 트럼프 대통령은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Shehbaz Sharif) 총리와 아심 무니르(Asim Munir) 육군 참모총장의 중재를 받아들여 2주간의 공격 유예에 합의했다. 이란 또한 이 제안을 전격 수용했다. 유가는 14% 떨어졌고 글로벌 증시는 반등했다. 오는 4월10일 파키스탄(Pakistan)의 수도 이슬라마바드(Islamabad)에서 열리는 협상 테이블에는 이란의 '10개조 평화안'이 오른다. 세계는 다시 한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 안도는 얼마나 취약한가. '문명을 지우겠다'는 협박 한마디가 협상장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전례가 만들어진 순간, 국제질서는 이미 한 단계 내려앉았다. 다음 위기에서 또 다른 지도자가 이 문장을 꺼내 들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협상의 성과가 크면 클수록, 그 성과를 만들어낸 언어의 후과는 오래갈 것이다.
한국에게 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동맹은 여전히 소중하지만, 동맹의 변덕까지 신뢰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원전 조기 재가동과 전략비축유 방출, UAE로부터의 긴급 원유 확보, 러시아산 원유 예외 협상은 모두 '플랜 B'의 필요성을 웅변한다. 에너지 자립, 국방 자강, 공급망 다변화는 더 이상 정책 슬로건이 아니라 국가 존립의 문제로 돌아왔다.
우리가 목격한 것은 무기의 전쟁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어의 전쟁이었고, 도덕의 전쟁이었으며, 무엇보다 '문명'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시험하는 전쟁이었다. 교황이 말했듯이, 전쟁을 일으키는 자의 손이 피로 물든다면, 전쟁을 정당화하는 언어는 그 손의 장갑이 된다. 140자(字)의 위협이 한 문명을 지울 수 있다는 상상 자체가 일상이 되어 버린 세계에서, 외교의 진짜 과제는 무기를 내려놓는 일보다 언어를 되찾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슬라마바드의 협상 테이블 위에는 석유와 제재, 해협의 통행료가 놓일 것이다. 그러나 그 테이블 아래에는 더 무거운 것이 놓여 있다. 바로 '문명'이라는 단어 자체의 존엄이다. 이번만큼은, 그것을 지키는 쪽이 이겨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