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가 곧 권력" 유형자산 귀환에 韓 제조주 웃는다

  • 등록 2026.04.02 10: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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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우선주의가 부른 설비투자 열풍…소재·산업재 섹터 낙관론 확산
AI 반도체 장비가 이끄는 투자 순항, 15년 만의 '실물 자산' 大역전

 

경제타임스 김재억 기자 |  글로벌 경제의 패러다임이 격변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비용과 고확장성을 무기로 세계 성장을 견인했던 ‘무형자산’의 독주 체제가 저물고, 기계·장비·건물 등 실체가 있는 ‘유형자산’이 다시금 화려한 부활을 알리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 확산과 공급망 재편이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 설비투자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탄탄한 제조업 기반을 갖춘 한국 경제와 산업재·소재 섹터가 새로운 수혜 국면을 맞이할 전망이다.

 

지난 15년여간 글로벌 투자 지형은 소프트웨어, 특허, 저작권 등 물리적 실체가 없는 무형자산 위주로 재편되어 왔다. 실제 데이터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무형자산 투자의 연평균성장률은 4.1%를 기록하며 유형자산(1.1%) 대비 약 4배나 빠른 속도로 팽창했다. 2009년 주요국 GDP 대비 투자 비중에서 무형자산이 유형자산을 추월한 이후 그 격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흐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한화투자증권 임혜윤 연구원은 최근 "보호무역정책 강화와 자국 우선주의 확산으로 인해 제조업 육성 기조와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 노력이 강해지고 있다"며 "관세 분쟁과 지정학적 충돌은 공급망 차질이 생존 문제라는 인식을 강화시켰고, 이것이 곧 유형자산 투자의 강세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형자산 부활의 또 다른 축은 공급 측면의 변화다. 글로벌 제조업의 하방 압력이었던 '중국발 밀어내기 수출' 부담이 점차 완화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수출단가 하락 폭이 축소되고 물량 증가세가 약화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철강 및 석유제품의 생산과 내수 격차가 줄어들고, 2차전지와 태양광 제품의 수출단가가 반등 기미를 보이면서 초과공급 해소 가능성이 커졌다.

시장 일각에서는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제기하나, 전문가들의 시각은 담담하다. 에너지 효율성 개선으로 인해 과거 오일쇼크 당시 GDP 대비 6%에 달했던 원유 지출 비중이 최근 2% 내외로 급락했기 때문이다. 한화투자증권은 "원유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감내 가능한 유가 수준이 높아졌으며, 유가가 100~110달러 선을 추세적으로 넘지 않는다면 경기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미 실물 지표에서는 유형자산 수요 회복 시그널이 뚜렷하다. 미국과 유럽의 금속·화학제품 신규 주문이 강화되고 있으며, IT 외에도 일반 및 건설 기계 수주가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반도체 분야는 AI 수요를 바탕으로 2027년까지 장비 매출 증가율이 상승 곡선을 그릴 것으로 예상되며, HBM(고대역폭메모리) 관련 후공정 장비 수요가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유형자산의 부활'은 소재, 산업재 섹터와 더불어 한국처럼 강력한 제조업 경쟁력을 보유한 국가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공급망 재편의 혼란 속에서도 기계 설비와 핵심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귀환은 단순한 회귀가 아닌, 기술력이 결합된 새로운 성장 동력의 확보라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정밀한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재억 기자 jekim@k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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