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완성차 업계의 정점에 선 현대·기아자동차와 그 밑에 촘촘히 얽힌 부품 공급망 생태계에서 빚어진 '하청업체 갑질' 비극이 또다시 사법적 벽에 부딪혔다.
1차 대형 협력사의 납품단가 인하 압박과 납품 중단 사태, 그리고 이어진 형사 고소로 4년 넘게 감옥살이를 했던 2차 하청업체 대표가 명예 회복을 위해 제기한 재심용 고소 사건마저 검찰의 6차례 검사 교체 끝에 끝내 '무혐의'로 종결됐다.
대기업 완성차 중심의 일방적인 부품 공급망 구조 속에서 2차 하청업체는 생존권을 걸고 절규했으나, 돌아온 것은 '공갈범'이라는 낙인과 장기 수감, 그리고 사법 당국의 석연찮은 수사 지연이었다는 비판이 업계 안팎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 '단가 후려치기' 버티다 공장 문 닫았더니…돌아온 건 '공갈죄 덫'
이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기아차의 2차 하청업체인 대진유니텍을 경영하던 송윤섭 전 대표는 현대차의 대표적 1차 협력사이자 공조부품 독점 공급업체인 한온시스템(전 한라공조)의 지속적인 '단가 후려치기' 등 전형적인 원·하청 갑질에 시달렸다. 송 전 대표는 1985년 창업 후 수직계열화 체계를 구축해 한온시스템·위니아만도 등에 핵심 부품을 공급해 왔다.
완성차 업계의 부품 조달 구조는 흔히 '피라미드형'으로 불린다. 완성차(현대·기아차)가 1차 협력사에 비용 절감을 압박하면, 1차 협력사는 그 부담을 2차·3차 하청업체에 고스란히 전가하는 구조다. 부품 납품단가가 지속적으로 깎이면서 한계 상황에 직면한 송 전 대표는 하청업체가 쥘 수 있는 마지막 저항 카드인 '부품 공급 중단'을 통보했다. 이어 1차 협력사 한온시스템 측에 회사를 인수하거나 자회사로 편입해 달라는 고육지책을 제안했다.
현대·기아차는 라인이 멈추는 위기를 홀류생산 시스템을 적용해 생산라인을 정상적으로 가동했다. 또한 하청업체들의 본보기를 삼기위해 한온시스템은 지난 2026년4월 대진유니텍을1300억원에 인수하기로 전격계약체결했다. 사태는 하청업체의 한계 탈출로 일단락되는듯 보였다
그러나 인수 계약서에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인 불과 일주일 뒤, 한온시스템은 태도를 돌변했다. 송 전 대표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특가법) '공갈죄' 혐의로 검찰에 전격 고소한 것이다.
'1차 하청의 무리한 단가 압박 등 갑질 발생 → 2차 하청의 생존권적 납품 중단 → 공급망 마비 우려에 따른 기업 인수 → 사후 공갈죄 고소'로 이어진 일련의 수순은 완성차-1차 협력사 카르텔이 하청업체를 옭아매는 잔혹한 공식 그대로였다. 검찰 기소와 법원의 유죄 판단 끝에 송 전 대표는 무려 4년2개월 동안(2017년 12월~2022년 8월 12일) 차디찬 감옥살이를 치른 뒤에야 지난 2022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 6차례 검사 교체와 16일 만의 급속 불기소…석연찮은 수사 지연
2022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송 전 대표는 "재판 과정에서 1차 하청 및 현대차 관계자들의 위증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2024년 6월, 재심 청구를 위한 법적 징검다리로 당시 관련자들을 '모해위증죄'(謨害僞證罪)로 고소했다.
모해위증죄는 형사사건 등에서 피고인이나 피의자, 징계혐의자를 해할 목적으로 법정에 출석한 증인이 허위 진술을 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단순히 기억에 반하는 허위 증언을 하는 ‘일반 위증죄’(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와 달리, 타인에게 형사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게 할 적극적인 고의(목적성)를 전제로 해 벌금형 없이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는 중범죄다.
고소 대상에는 윤여을 당시 한온시스템 회장 겸 한앤컴퍼니 회장, 이인영 전 한온시스템 대표집행임원, 그리고 완성차 구매 라인의 핵심이었던 황춘식 전 현대차 구매팀장 등 총 6명이 포함됐다. 1심 재판 증언 당시 "대진유니텍의 부품 공급이 중단되면 대체 생산에 수개월(9~10주 이상)이 걸려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어 협박에 굴복했다"고 진술한 것이 거짓이었다는 주장이었다. 송 전 대표 측은 "금형 반출 후 1~2일이면 충분히 대체생산이 가능한 구조였음에도 위력을 과장해 자신을 공갈범으로 몰았다"고 맞섰다.
하지만 사건 처리는 이례적인 표류를 거듭했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 후 송 전 대표의 이의신청으로 2025년 5월 대전지검 천안지청에 송치된 사건은 무려 1년 넘게 낮잠을 잤다. 그 과정에서 담당 수사검사만 정기인사, 파견, 전출, 원인 불명의 '기타 사유' 등으로 무려 6차례나 재배당되는 기형적인 수사 행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지난 9월1일 7번째 검사가 배당된 지 불과 16일 만에 검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전격 '무혐의(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1년 넘게 끌어온 사건을 마지막 검사가 단 2주 남짓 만에 털어버린 셈이다.
■ 검찰 "단순한 의견 차이일 뿐"…하청 피해자 "항고·재정신청 갈 것"
검찰은 불기소이유서에서 피의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체생산 기간에 대한 진술은 사실의 진술이라기보다 "개인적 평가와 의견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피의자들이 가처분 등을 통해 금형을 반환받고 제품 생산 후 납품하는 데 소요되는 기간은 고소인이 주장하는 1~2일을 훌쩍 넘어서는 것으로 보이고, 공장 봉쇄 상황 등을 볼 때 허위 진술로 보기 어렵다"며 "고소인을 불리하게 만들 목적(모해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대해 송 전 대표는 강하게 분통을 터뜨렸다. 송 전 대표는 "제품생산의 핵심인 금형을 반환받아야 하지만 아예 요구조차 하지않았다. 완성차와 1차 하청의 막강한 지배력 앞에서 짓밟힌 2차 하청업체의 억울함을 밝혀줘야 할 사법 당국이 고의적인 늑장 수사 끝에 대기업 임원진에 면죄부를 줬다"며 "대전고검에 즉각 항고하고, 기각될 경우 법원에 재정신청을 내서라도 끝까지 실체적 진실을 가려낼 것"이라고 법적 투쟁을 예고했다.
자동차 부품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기아차 중심의 수직 계열화된 생태계에서 2차 협력사는 원가 절감의 최전선 총알받이로 전락하기 일쑤"라며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해 저항하면 거꾸로 형사처벌을 받는 불공정한 역학 구조가 여전히 사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