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4차 산업혁명의 첨단 기술이 눈부시게 진화하고 있지만, 정작 화재와 재난 현장에서는 여전히 낡은 규제와 칸막이 행정에 가로막혀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예산 배분, 데이터 연계, 기관 간 관할권 다툼 등 ‘행정적 지체’가 현장 대응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팽배한 가운데, 이를 정면으로 풀기 위한 학술·정책 싱크탱크가 닻을 올린다.
소방과 재난 분야의 행정 체계 및 거버넌스를 전문 연구하는 사단법인 한국소방재난행정학회(KRIFD·The Korean Research Institute of Fire and Disaster, 회장 박기관, krifd.or.kr)는 오는 9월18일 오후2시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청 다목적홀에서 ‘창립 발대식 및 제1회 학술세미나’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다.
학회는 2024년11월 소방청의 공식 설립허가를 획득하고 같은 해 12월 사단법인 법인 등기를 완료했다. 이번 창립 행사의 대주제는 「소방·재난, 행정이 먼저 움직인다. AI로 더 신속하게, 더 정확하게」로 확정됐다.
■ 중앙-지방-소방-학계 첫 결집…'칸막이 해소' 거버넌스 시동
이번 창립 행사는 소방·재난 안전 분야의 거버넌스 측면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행정안전부, 소방청, 강원 원주시를 비롯해 한국행정학회, 한국지방행정연구원, 한국지방자치학회 등 9개 핵심 유관 기관이 공동으로 주관에 나섰다.
그동안 재난 관리 정책은 행안부의 총괄 기조, 소방청의 현장 진압, 지방정부의 관할 구역별 관리, 학계의 분절된 공학적 접근 등으로 나뉘어 있어 재난 현장에서 일사불란한 유기적 결합이 어려웠다. 중앙정부와 소방청, 지방자치단체, 행정·소방 학계가 ‘소방·재난 행정’이라는 단일 화두 아래 한자리에 모여 테이블을 맞대는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이날 행사의 기조강연은 황범순 행정안전부 재난관리정책국장이 맡아 「기후재난 상시화 시대의 국가 재난관리 정책방향」을 제시한다. 극한 호우와 도시 침수, 대형 산불이 연례화되는 기후위기 국면에서 국가 차원의 행정 프레임워크 재설계 방향을 다룰 예정이다.
이어 박기관 한국소방재난행정학회장의 대주제 발제에 이어, 이인중 소방청 혁신행정법무담당관이 「재난위기 시대, 소방의 과제와 전망」을 통해 일선 소방 조직의 혁신 로드맵을 발표한다.
종합토론에는 재난안전 관리 분야의 최고 권위자들이 포진했다. 김성호 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좌장을 맡고, 김흥배 원주시 안전교통국장, 최지민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위원, 박종혁 한경대 교수, 전용한 상지대 소방공학과 교수가 패널로 참여해 현장 실증과 법·제도 개선 방안을 놓고 열띤 토론을 펼친다.
■ 美 덴버 '출동 70초 단축' vs 韓 '검증 데이터 전무'…행정 실증 부재가 원인
학회가 창립과 동시에 가장 강하게 던지는 화두는 ‘해외 검증 기술의 국내 행정 안착’이다.
실제로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긴급구난 기술이 단순한 연구실 단계를 넘어 실질적인 인명 구조 성과로 입증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인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의 경우, 교통 솔루션 기업 미오비전(Miovision)의 2023년 통계에 따르면 북미 전역에서만 3100개 도시, 약 18만 개 교차로에 이미 촘촘히 구축돼 있다.
미국 연방도로청(FHWA) 보고서에 따르면 덴버시는 긴급차량 우선신호 도입 후 소방·구급차 출동 1회당 시간을 평균 70초 단축시켰고, 세인트폴시는 교차로 내 긴급차량 충돌 사고를 무려 71%나 줄이는 획기적 성과를 거뒀다. 1분 1초가 생사를 가르는 심정지 및 대형 화재 현장에서 70초 단축은 생존율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수치다.
반면 국내는 지자체별로 긴급차량 우선신호 설비를 도입하는 ‘확산기’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청(신호체계 관할), 지자체(도로·교통 인프라 예산), 소방서(출동 지휘) 간의 데이터 단절과 행정적 비협조로 인해 출동 시간 단축 효과나 사고 감축률을 정량적으로 검증한 도시가 전무한 실정이다. 좋은 기술과 장비가 개발되어도 이를 뒷받침할 통합 행정 시스템과 실증 제도가 부재해 투자 대비 효용을 측정조차 못 하고 있는 셈이다.
■ 정부 'AI행동계획' 속도전…원주 혁신 거점서 실질적 해법 캔다
이번 학회 출범 시점은 정부의 범국가적 디지털 안전 전환 기조와도 직결된다. 정부는 지난 2월 「대한민국 인공지능행동계획」을 통해 사고와 재난을 AI로 사전 예측하고 선제 대응한다는 정책 원칙을 확정했다. 행정안전부 역시 각 부처에 흩어진 재난 데이터를 통합해 실시간으로 지휘하는 ‘범정부 재난안전 인공지능 전환계획’ 수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학회 창립지가 강원 원주시로 결정된 점도 전략적 포석이다. 원주는 도로교통공단 본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본원,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등이 한곳에 모여 있는 국내 대표 교통·재난안전 클러스터다. 국가 공공기관의 빅데이터와 첨단 감식 역량을 지방정부의 소방 실무에 결합할 수 있는 최적의 테스트베드로 평가받는다.
박기관 한국소방재난행정학회장은 “재난 현장의 대응을 늦추는 것은 결코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낡은 제도와 복잡한 절차, 기관 간 칸막이”라며 “인공지능과 첨단 디지털 기술이 일선 소방관과 국민의 안전에 실질적으로 닿게 하려면 행정이 먼저 혁신적으로 움직여야 하며, 그 최적의 해법을 찾아내는 것이 학회의 핵심 소명”이라고 밝혔다. 이어 “중앙정부, 소방조직, 지방자치단체, 학계가 사상 처음으로 머리를 맞대는 이번 창립 세미나가 대한민국 재난 행정 대전환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행사는 1부 창립 발대식, 2부 학술세미나, 3부 참석자 교류회 순으로 진행되며, 일반 참가 등록은 행사 당일 오후1시30분부터 현장에서 진행된다. 세부 세미나 일정 및 발표 자료는 학회 공식 홈페이지(krifd.or.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