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아침 출근길 건물 문을 들어서는 순간과 저녁 퇴근길 문을 나서는 순간. 현대인은 하루에 최소 두 번, 완전히 다른 규칙이 지배하는 두 개의 세계를 건너다닌다.
직장과 조직이라는 '직선의 세계'는 명확하다. 경로는 짧을수록 좋고, 모든 행동은 효율과 성과, 숫자로 평가받는다. 직선의 세계는 늘 속도와 목표 달성을 향해 가파르게 질주한다. 반면, 건물을 빠져나온 뒤 마주하는 가족·이웃·친구와의 '곡선의 세계'는 다르다. 굳이 특정 지점에 도달하지 않아도 괜찮고, 자신의 쓸모나 가치를 증명하지 않아도 관계가 유지된다.
저자는 이 두 세계의 관계를 명쾌하게 정의한다. "직선은 늘 곡선을 이긴다. 한편, 곡선은 직선을 이기지 못하지만, 애초에 직선과 같은 경기장에 올라서지 않는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이 두 세계의 규칙을 혼동한다는 점이다. 조직 안에서 감정적·실존적 존재로만 머물려 하거나, 집과 관계의 세계로 돌아와서까지 계산과 평가의 잣대를 대는 순간, 성과와 신뢰를 모두 잃게 된다. 35년간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의 수장으로 살았던 저자는 이 경계선에서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지금 나는 어느 세계의 규칙으로 살고 있는가?"라는 묵직한 물음을 던진다.
< 현대인이 오가는 두 가지 세계의 규칙 비교 >
| 구분 | 직선의 세계 (조직·직장) | 곡선의 세계 (가족·공동체) | 비고 및 주요 특징 |
| 핵심 가치 | 효율,성과,목표달성,책임 | 존재, 관계, 공감, 회복 | 서로 지향하는 삶의 목적이 다름 |
| 경로 및 속도 | 최단거리,가속도,속도전 | 정착지 없는 거닒, 여유 | 직선은 짧을수록, 곡선은 깊을수록 의미 |
| 존재 증명 |
숫자와 결과물로 증명 |
증명 없이 존재 자체로 인정 | 곡선에서는 쓸모를 입증할 필요 없음 |
| 경기장 성격 | 경쟁 및 엄격한 평가의 장 | 연대 및 온기의 장 | "곡선은 직선과 같은 경기장에 서지않음" |
| 혼동 시 위기 |
감정·실존 우선 시 성과 상실 |
계산·평가 도입시 신뢰 파탄 |
규칙이 뒤섞이는 순간 두 세계 모두에서 설 자리를 잃음 |
■ 거대 자본과 알고리즘의 시대, "누가 목적함수를 정하는가"
『직선은 곡선을 이긴다, 곡선은 직선에 관심이 없다』(남규택 저, 파이돈, 2026년7월24일)는 단순한 개인의 삶에 대한 성찰에 머물지 않고, 기술이 삶의 전 영역을 재편하는 플랫폼 자본주의와 AI 시대로 분석의 지평을 넓힌다.
과거 마르크스 시대에 경제의 맥을 자본가가 쥐었다면, 오늘날은 코드를 다루고 숫자에 밝은 기술 엘리트, 이른바 '디제라티(Digerati)'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소수의 엔지니어와 플랫폼 기업이 알고리즘을 만들고 추천과 배제를 결정하지만, 그 잉여가치의 흐름과 윤리적 통제 장치는 보이지않는 곳에 숨겨져 있다.
저자는 "4차 산업혁명을 외치면서 리더십은 조선시대 성리학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가한다. 데이터와 현장을 직시하지 않고 과거의 권위에 기대는 리더십을 경계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실험 정신과 겸손함이 AI 시대의 필수 덕목임을 역설한다. 칭기즈칸의 100만 유목민이 세계를 바꿀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권력을 쥔 자가 지식 앞에서 겸손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 "AI는 패턴을 읽지만, 인간은 방향을 결정한다"
생성형 AI가 인간의 창의성마저 위협하는 시대,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가치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 답을 '감식안(Insight & Judgment)'에서 찾는다.
-AI의 몫 : 데이터 패턴 분석, 방대한 아이디어의 신속한 생성
-사람의 몫 : 가치 판단, 방향 결정, 결과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감식안
AI가 수많은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지언정, 어떤 가치를 선택하고 어디로 나아갈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의지와 윤리다. 거대한 기술의 가속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를 탐하는 대신 '진짜를 알아보는 안목'과 '사유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는 분석이다.
■ '생각의 온도'를 남기는 인문학의 온기
저자 남규택은 기업 현장의 경험을 담은 『가장 낮은 마케팅 이야기』, AI 개념을 쉽게 풀이한 『문과의 언어로 풀어낸 AI 필수 용어 56』에 이어 이번 세 번째 저서로 돌아왔다.
회의실, 길거리, 신문 기사 등 일상에서 마주친 장면들을 2~4쪽 분량의 단정한 에세이로 담아낸 이 책은 거창한 구호나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저자 스스로 "사회를 바꾸는 거대한 구조를 설계하진 못했으나, 그저 생각할 수 있는 온도를 남기고 싶었다"고 밝히듯, 직선의 속도전에 지친 독자들에게 숨을 고르고 '곡선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따뜻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효율과 성과만을 향해 직선으로 질주하던 하루의 끝, 다시 인간다움과 공동체의 온기가 숨 쉬는 곡선의 세계로 돌아가고자 하는 모든 현대인에게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