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출판 시장에서 ‘치유’와 ‘자기 돌봄(Self-care)’을 키워드로 한 인문 에세이의 열기가 식지 않는 가운데, 보건의료 언론계의 대기자 출신 저자가 삶의 고단함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신간을 선보여 독자들과 출판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평생을 청진기 소리 너머의 인간사, 그리고 의료 현장의 아픔과 삶을 기록하는 데 바쳐온 황보승남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일간보사·의학신문사 편집국장과 의계신문 편집국장 등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보건의료 저널리즘의 한 축을 담당해 온 그는 최근 독서 에세이집 <문장을 읽다, 마음을 쓰다>(도서출판 지누, 200쪽, 1만5000원)를 세상에 내놓았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정책과 현장을 취재하던 냉철한 저널리스트의 펜 끝이, 이제는 고단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지친 마음을 온전히 다독이는 가장 따뜻한 ‘인문학적 청진기’로 변모한 셈이다.
■ 8년간 매달 축적한 91편의 기록…폭넓은 독서가 빚어낸 인문 에세이
이번 신간은 개인적 회고나 단발성 감상문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가 지난 2018년부터 월간 <보건소저널>에 '文章으로 읽는 마음 한 줄'이라는 타이틀로 무려 8년여간 묵직하게 이어온 연재글을 하나로 모아 엮은 진중한 결과물이다.
"매달 최소 한 권의 책을 가슴으로 읽어내고, 단 한 문장이라도 온전히 나 자신의 삶으로 승화시키겠다"는 저자 스스로와의 엄격한 다짐에서 출발한 이 여정은, 세월을 거쳐 목차 기준 총 91편의 깊이 있는 글로 쌓였다.
책에 녹아든 독서의 스펙트럼은 방대하다. 저자는 가벼운 소설과 울림을 주는 시(詩)는 물론, 고전 철학, 심리학, 정통 의학서, 자기계발서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넘나드는 폭넓은 독서 체력을 선보인다. 그 활자들 속에서 건져 올린 정수(精髓)의 문장들을 팍팍한 삶의 현실 위에 고스란히 비추어 내며, 독창적인 인문 에세이로 재탄생시켰다.
■ 인생의 네 계절을 건너는 지혜…"관계는 숫자가 아닌 온도로 남는다"
책의 구조는 삶의 입체적인 결을 반영하듯 세심하게 설계되었다. 총 4부(1부 '인생이 가벼워지는 수업' / 2부 '삶의 방식에 정답은 없다' / 3부 '조금 느려도 괜찮습니다' / 4부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로 나뉜 목차를 통해 저자는 자기 돌봄과 참된 행복의 의미, 인간관계의 본질과 외로움의 수용,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한 인문학적 태도, 마침내 도달해야 할 사랑과 희망에 이르기까지 삶의 다양한 계절을 조명한다.
특히 저자는 현대인들을 짓누르는 '완벽주의 강박'을 과감히 내려놓을 때 비로소 가볍고 단단한 삶이 시작된다고 역설한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오늘 이 정도면 충분했다"고 스스로에게 건넬 수 있는 마음의 넉넉함, 삶의 예기치 못한 실패를 거절이 아닌 배움의 과정으로 수용하는 유연함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내공이라는 지적이다.
복잡한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도 울림을 준다. 저자는 "관계는 타인의 숫자가 아니라 서로 나누었던 온도로 남는다"는 명언을 제시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완벽을 요구하기보다 서로가 가진 본연의 빛깔과 결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비로소 균열 없이 오래가는 관계가 형성된다고 당부한다.
■ 의학과 문학의 접경에서 발견한 '치유의 처방전'
이 책의 가장 독창적인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장에 배치된 '의학과 문학의 접경' 섹션이다. 평생을 의학 언론에 몸담아 온 저자만의 차별화된 통찰이 가장 강렬하게 분출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저자는 "의학이 인간의 물질적 몸(Body)을 고치고 치료하는 과학적 학문이라면, 문학은 인간의 정신적 마음(Mind)을 치유하는 감성적 예술"이라 정의한다. 외견상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는 두 영역이, 본질에 있어서는 '인간에 대한 숭고하고 깊은 사랑'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완벽히 궤를 같이한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이 책에 수록된 글 한 편 한 편이 심신이 지친 독자들에게 읽을거리를 넘어, 마음의 병을 다스리는 작지만 효험 있는 '처방전'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덧붙였다.
■ 시간의 흔적을 억지로 고치지 않은 솔직함…출판계가 주목하는 사유의 깊이
저자는 세월의 시차를 두고 쓰인 글들 사이에서 혹여나 발견되는 생각의 미세한 변화나 소소한 모순들을 억지로 매끄럽게 수정하거나 윤색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 부조화와 변화의 자국이야말로 한 인간이 한 시대를 진솔하게 호흡하며 살아온 소중한 '시간의 훈장'이자 흔적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타인의 유행이나 속도를 무작정 따라가느라 정작 가장 나다운 독자적인 빛깔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당부하며,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자기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오늘 하루도 참 애썼다, 고맙다"는 나지막한 위로를 건네볼 것을 권한다.
한편, 황보승남 작가는 언론인으로서의 활동 외에도 <한국의학 1백년사>, <대한당뇨병학회 50년사> 등 대한민국 의학史의 굵직한 궤적을 정리하는 사가(史家)로서의 중책을 주도해 왔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과 녹십자언론문화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인터넷중소병원·보건소저널 발행인이자 사단법인 한국만성질환관리협회 상임부회장 겸 사무총장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몸의 건강을 다뤄온 저널리스트가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인문학자로 건네는 이 200쪽 분량의 따뜻한 기록은, 속도전과 경쟁에 지친 출판 시장과 독자들에게 묵직하고 가슴 먹먹한 여운을 선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