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타임스 온인주 기자 | 미국 나스닥 시장에 성공적으로 입성한 SK하이닉스가 국내 증시에서는 12% 넘게 급락하며 200만원 선 아래로 밀렸다.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 기대가 현실화한 뒤 차익실현 매물이 출회된 데다, 메모리 업황의 정점 통과 우려와 실적 기대치 부담, 레버리지 상품의 수급 영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13일 오후 12시 32분 기준 SK하이닉스는 전 거래일보다 27만9000원(-12.80%) 내린 190만1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날 장중 저가는 190만원으로, ‘200만닉스’가 무너졌다.
주가는 이날 220만7000원에 출발해 장 초반 221만5000원까지 올랐지만 이후 낙폭을 빠르게 확대했다. 지난 6월 23일 기록한 장중 최고가 300만2000원과 비교하면 약 36.7% 낮은 수준이다.
거래량도 크게 늘었다. 같은 시각 누적 거래량은 약 745만주로, 최근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 40조원 조달 성공했지만…상장 기대 현실화 뒤 차익실현
SK하이닉스의 미국 시장 입성 자체는 흥행에 성공했다.
SK하이닉스 ADR은 지난 10일 현지시간 나스닥에서 ‘SKHY’라는 종목코드로 거래를 시작했다. ADR 공모가는 149달러로 정해졌으며, 첫날 170달러에 출발해 168달러 선에서 거래를 마쳤다. 공모가보다 약 13% 상승한 수준이다.
이번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약 265억달러로, 원화 환산 시 약 40조원 규모다. 외국 기업의 미국 증시 상장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로 평가된다. SK하이닉스는 조달 자금을 국내로 들여와 HBM 생산시설과 첨단 반도체 장비 투자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다만 국내 주가에는 상장 기대감이 사전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장이라는 이벤트가 실제로 마무리되자 그동안 주가 상승을 기대하며 유입됐던 자금 중 일부가 차익실현에 나선, 이른바 ‘셀 온 뉴스’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최근 주가 상승을 이끌었던 SK하이닉스 ADR 상장 기대가 현실화되면서 이벤트 소멸에 따른 차익실현 압력이 나타났다”며 “여기에 2분기 실적이 높아진 시장 눈높이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더해졌다”고 분석했다.
■ 메모리 피크아웃 우려·실적 눈높이 부담에 투자심리 위축
ADR 상장 흥행이 메모리 업황을 둘러싼 우려까지 해소하지는 못했다.
시장에서는 최근 반도체 주가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면서 메모리 업황의 정점 통과 가능성이나 실적 추정치 조정과 관련된 소식에 투자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 ADR 상장 흥행에도 메모리 업황 본연의 사이클 피크아웃 우려는 해소되지 못한 상태”라며 “최근 반도체주의 연쇄 급락으로 주식 보유자들이 악재로 해석될 수 있는 뉴스나 보고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반도체주의 큰 변동성이 투자 피로도를 높이며 수급 이탈을 초래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이란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도 증시에 부담을 더했다. 주말 사이 호르무즈해협 폐쇄 가능성을 놓고 미국과 이란의 엇갈린 발표가 나오면서 국제유가와 미국 국채금리가 상승했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74달러대로 올랐고,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도 4.58% 수준으로 상승했다. 다만 미국 나스닥 선물과 일본 닛케이 지수의 낙폭은 1% 안팎에 머물러, 국내 증시의 하락폭을 지정학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 반도체 급락에 코스피도 휘청…매도 사이드카 발동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대형주의 급락은 코스피 시장 전체에도 충격을 줬다.
이날 코스피200 선물 가격이 급락하면서 프로그램 매도호가의 효력을 5분간 정지하는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반도체 업종이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주요 반도체주의 낙폭이 지수 하락으로 직결된 것이다.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등 반도체 및 전자부품 대형주도 동반 하락했다. SK하이닉스와 지분 관계가 있는 SK스퀘어와 그룹주 역시 큰 폭의 약세를 나타냈다.
최근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확대된 배경으로는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의 수급 구조도 거론된다. 레버리지 ETF는 기초자산 가격이 하락할수록 운용사가 목표 배율을 맞추기 위해 해당 주식을 추가로 매도해야 하는 구조다. 주가 하락이 기계적인 추가 매도로 이어지고, 이 매도가 다시 주가를 끌어내리는 이른바 ‘숏감마’ 현상이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시장 급락 이후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의 순자산총액은 지난달 25일 17조4000억원에서 11조6000억원으로 약 5조8000억원 감소했다. 관련 수급 규모가 줄기는 했지만,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미칠 수 있는 추가 매도 압력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 ADR과 본주 가격 차이, 장중 약 30%로 확대
이날 국내 본주가 급락하면서 미국 ADR과 국내 주식 간 가격 차이도 크게 벌어졌다.
SK하이닉스 ADR은 상장 첫날 국내 본주 환산가격보다 약 16% 높은 수준에서 거래를 마쳤다. 그러나 이날 국내 주가가 12% 넘게 하락하면서, 금요일 미국 ADR 종가와 국내 장중 주가를 비교한 가격 차이는 약 30% 가량 확대됐다.
이는 대표적인 ADR 상장 기업인 대만 TSMC의 본주와 미국 ADR 간 가격 차이보다도 큰 수준이다. TSMC의 경우 최근 미국 ADR이 대만 본주보다 약 15~20% 비싸게 거래되고 있으며, 금요일 기준 프리미엄은 약 15.4%로 집계됐다.
ADR에는 미국 투자자들의 접근성과 현지 수요, 시장 규모와 유동성 차이 등이 반영돼 일정 수준의 프리미엄이 붙을 수 있다.
또 TSMC는 대만 본주를 미국 ADR로 바꾸는 통로가 강하게 제한돼 있어, 미국에서 수요가 늘더라도 ADR 공급이 빠르게 확대되기 어렵다. 이에 따라 본주와 ADR의 가격 차이가 장기간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SK하이닉스도 국내 본주와 ADR의 전환이 완전히 자유로운 구조는 아니다. 전환이 전면적으로 차단된 것은 아니지만, 회사 승인과 국내 예탁·커스터디 절차 등을 거쳐야 해 두 시장의 가격 차이가 실시간으로 해소되기는 어렵다.
다만 이날 장중 나타난 25% 이상의 차이를 곧바로 미국 시장이 SK하이닉스를 국내보다 25%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미국 ADR 가격은 아직 지난 금요일 종가에 머물러 있는 반면, 국내 본주는 이날 급락분을 먼저 반영했기 때문이다.
■ 오늘 밤 미국 ADR이 한국 급락 반영할지 주목
시장에서는 이날 밤 미국 시장에서 거래될 SK하이닉스 ADR의 움직임을 첫 번째 시험대로 보고 있다.
미국 ADR이 국내 본주의 급락을 반영해 큰 폭으로 하락할 경우, 현재 25% 이상으로 벌어진 가격 차이는 미국 주가가 국내 주가를 따라 내려오는 방식으로 일부 좁혀질 수 있다.
이 경우 상장 첫날 형성된 16% 안팎의 프리미엄 가운데 일부가 초기 상장 열기나 수급 효과였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미국 ADR 하락이 다음 거래일 국내 투자심리에 다시 부담을 주면서 SK하이닉스 본주의 변동성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미국 ADR이 국내 주가 급락에도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유지한다면, 미국 투자자들의 매수 수요와 현지 시장에서의 프리미엄이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이 경우 다음 거래일 국내 본주가 미국 ADR 가격을 참고해 반등을 시도하면서 양 시장의 가격 차이를 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미국 ADR이 가격을 유지한다고 해서 국내 본주가 반드시 같은 폭으로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두 시장은 거래 시간과 투자자 구성, 환율, 유동성, 공매도 및 차익거래 여건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 美 ADR→국내 본주…양 시장 가격이 번갈아 영향 줄 가능성
SK하이닉스가 한국과 미국 시장에서 동시에 거래되기 시작하면서 앞으로는 두 시장의 가격 흐름을 함께 비교할 필요성이 커졌다.
국내 증시에서 먼저 형성된 주가가 밤사이 미국 ADR에 반영되고, 다시 미국 시장의 거래 결과가 다음 날 국내 본주에 영향을 주는 흐름이 반복될 수 있다.
가격 차이가 확대되면 글로벌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비싼 시장의 주식을 팔고 싼 시장의 주식을 사는 차익거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다만 SK하이닉스의 경우 ADR과 본주 간 전환에 승인 및 예탁 절차가 필요해 실시간 무위험 차익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단기간에는 가격 괴리가 유지되거나 오히려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장기적으로는 추가 ADR 발행과 본주 전환, 차익거래 등을 통해 일정 수준으로 수렴할 수 있지만, 적정 프리미엄이 어느 정도인지는 실제 거래 과정에서 확인해야 한다.
삼성증권은 “앞으로는 ADR 프리미엄과 ADR·본주 사이의 가격 격차를 검증해 나가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하루의 등락만 보기보다 국내 본주와 미국 ADR의 가격 차이가 일정 기간 어느 수준에서 형성되는지, 괴리가 커질 때 어느 시장의 가격이 더 크게 움직이면서 차이를 좁히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 업황 전망과 별개로 단기 변동성 확대 가능성
중장기 실적 전망은 여전히 증권사별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HBM 가격 상승 가능성과 장기공급계약에 기반한 이익 가시성 등을 투자 포인트로 제시했다. 7월 1일부터 10일까지 반도체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한 점도 업황을 지지하는 지표로 거론된다.
다만 중장기 업황 전망과 단기 주가 방향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이번 급락이 반도체 업황의 구조적인 훼손을 의미하는지, ADR 상장 이벤트 소멸과 수급 조정이 일시적으로 겹친 결과인지는 향후 실적과 출하량, 제품 가격, 고객사 투자 흐름을 통해 추가로 확인해야 한다.
당장 시장의 관심은 이날 밤 미국 ADR이 국내 본주의 급락을 어느 정도 반영할지에 쏠린다. 이어 다음 거래일 국내 주가가 미국 시장의 결과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통해 SK하이닉스 ADR의 적정 프리미엄과 양 시장 간 가격 조정 방식이 본격적인 검증대에 오를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