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해외여행을 준비하던 소비자들 사이에서 가장 신뢰받던 글로벌 온라인 여행 플랫폼(OTA) '아고다(Agoda)'가 정부로부터 24억원대의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겉으로는 "부담 없이 나중에 결제하라"며 소비자를 위하는 척 편리성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교묘하게 가려진 화면 설계를 통해 추가 수수료를 전가하고 핵심 환불 정보를 숨겨왔던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7월7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이하 방미통위)에 따르면, 방미통위는 전날 정부과천청사에서 제22차 전체회의를 열고 환불 조건과 취소·변경 수수료 등 이용자 계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 정보를 명확히 알리지 않은 아고다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총 24억24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의결했다. 지난 2024년9월 첫 조사에 착수한 지 약 2년 만에 내려진 고강도 처분이다.
이번 제재는 단순히 한 글로벌 기업의 일탈을 벌하는 것을 넘어, 그동안 국내 온라인 플랫폼 시장에서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어 온 '다크 패턴(Dark Pattern, 이용자의 착각이나 실수를 유도하는 기만적 화면 설계)' 행위에 정부가 명확한 처벌 기준을 세웠다는 점에서 플랫폼 업계 전반에 거대한 파장을 몰고 오고 있다.
■ 결제창 곳곳에 심어둔 '소비자 기만 장치'…무엇이 적발되었나
방미통위의 조사 결과, 아고다가 전 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구축한 인터페이스 안에는 일반 이용자가 자력으로 알아채기 힘든 정교한 조작 체계가 숨어 있었다. 크게 두 가지 축에서 위법 행위가 확인됐다.
첫째는 숙소 예약 단계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해 온 ‘나중에 결제하기’ 서비스의 함정이다. 아고다는 당장 가용 자금이 부족하거나 여행 일정을 저울질하는 소비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우선 예약 후 결제 시점을 미룰 수 있는 옵션을 적극적으로 노출했다. 그러나 이 서비스를 클릭해 이용할 경우, 최종 결제 시점에 최대 5%의 추가 수수료가 원화 결제나 환율 변동과 무관하게 내부 알고리즘에 의해 부과될 수 있다는 핵심 사실을 은폐하거나 고지 화면 하단에 알아보기 힘든 작은 글씨로 숨겨두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예약 당시 보았던 금액보다 5% 비싼 청구서를 마주하고도 원화 결제 수수료나 환율 탓으로 오인해 지나치기 십상이었다.
둘째는 항공권 예약 과정에서 발생한 '중요 정보의 의도적 격리'다. 자유여행객들에게 가장 민감한 정보인 '환불 가능 여부'와 '취소·변경 수수료' 등의 안내를 기본 예약 확정 화면이 아닌, 텍스트 맥락과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메뉴에 은폐했다. 실제 아고다는 취소 규정을 ‘수하물 허용량 및 정책’이라는 별도의 서브 링크 안에 심어놓아, 소비자가 수하물 규정을 굳이 클릭해 들어가기 전까지는 자신이 구매하는 항공권이 환불 불가능한 '특가 상품'인지 조차 인지하지 못하도록 유도했다.
실제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이용자 유찬종 씨는 아고다 앱을 통해 선결제를 마치고 해외 현지 호텔에 도착했으나, 아고다 시스템과 현지 호텔 간의 불투명한 정보 전달 및 오인 유도로 인해 현장에서 이중 결제를 강요받는 황당한 피해를 겪기도 했다. 유 씨는 이에 대해 "이해하기 극히 어려운 복잡한 문구와 화면 설계로 되어 있어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함정을 피하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 플랫폼 규제의 이정표… 정부, '무관용 원칙'으로 플랫폼 독점 횡포 막는다
방미통위는 아고다의 이 같은 행위가 단순한 안내 미흡을 넘어, 전기통신사업법상 '이용자의 합리적인 선택권을 현저히 저해하고 부당한 비용을 전가하는 금지행위'에 명백히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비록 아고다 측이 방미통위의 본조사가 본격화된 이후 일부 UI(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수정하는 등 자진 시정에 나섰으나, 수년간 지속되어 온 위반 행위의 엄중함과 피해 규모를 고려해 과징금 감면 없이 전액 부과 조치를 단행했다.
김종철 방미통위원장은 이번 처분에 대해 강경한 메시지를 냈다. 김 위원장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는 이용자의 계약 체결과 비용 부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레이아웃을 명확하고 알기 쉽게 고지해야 할 법적 책임이 있다”고 못 박으며, “향후 글로벌 OTA 업계뿐만 아니라 이커머스 전반에서 자행되는 이용자 이익 침해 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고 지속적인 청문과 점검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력한 후속 규제를 예고했다.
■ '소비자 락인(Lock-in)'에만 혈안 된 글로벌 OTA…체질 개선 신호탄 될까
국내 온라인 여행 및 숙박 예약 시장은 매년 수조 원 규모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아고다·부킹닷컴·익스피디아 등 해외에 본사를 둔 글로벌 플랫폼들의 국내법 준수 의지와 소비자 보호 체계는 시장 성장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들은 막강한 자본력과 검색 상위 노출 지위를 무기로 국내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한 뒤, 약관의 불리함을 교묘하게 숨기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극대화해 왔다.
특히 이번에 적발된 다크 패턴 기법은 소비자가 플랫폼에 한 번 발을 들이면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게 만드는 이른바 '락인(Lock-in) 효과'를 악용한 전형적인 플랫폼 횡포다. 결제 직전 단계까지 가장 낮은 가격을 보여주다가 최종 승인 단계에서 수수료를 덧붙이거나, 해지 및 취소 경로를 미로처럼 복잡하게 만들어 소비자의 중도 포기를 유도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아고다 측은 정부의 의결 결과에 대해 공식적으로 "정부 심의 결과를 전적으로 존중하며, 지적된 시정 조치 및 시스템 프로세스 개선은 이미 내부적으로 모두 완료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아고다 한 곳의 수습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가 글로벌 플랫폼의 국내 대리인 지무 및 이용자 보호 의무를 강화하는 기조를 명확히 한 만큼, 향후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공유하는 타 글로벌 플랫폼들에 대한 연쇄적인 사법·행정적 압박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소비자의 눈을 속여 올린 매출은 결국 수십 배의 징벌적 과징금으로 돌아온다"는 이번 방미통위의 경고가 온라인 플랫폼 시장의 혼탁한 영업 관행을 정화하는 중대한 변곡점이 될 수 있을지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