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마케팅과 배재고 야구부의 응원 구호 논란이 며칠 사이 우리 사회의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기업의 부적절한 마케팅과 학생들의 치기 어린 응원 구호 문제로 보였던 이 사건은 정치권의 공방으로 번졌고, 대통령의 언급과 대통령 직속 위원회 인사의 발언까지 이어지며 증폭되었다.
이제 이 문제는 스타벅스만의 문제도, 배재고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가 마주한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 표현의 자유와 책임 사이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기둥이다. 헌법이 이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는 듣기 좋은 말만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때로는 불편한 말, 틀린 말, 다수의 정서와 어긋나는 말이라도 자유로운 논의 과정에서 드러나고 걸러질 수 있어야 민주주의는 유지된다.
그러나 모든 표현이 무제한 보호될 수는 없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폭력을 선동하거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표현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지만, 책임 없는 자유는 공동체를 흔드는 칼이 될 수도 있다.
세계 각국은 이 문제 앞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미국은 ‘사상의 시장’과 시민사회의 자정 능력을 신뢰하며 표현의 자유를 넓게 인정한다. 반면 나치의 비극을 겪은 독일은 하켄크로이츠 사용이나 홀로코스트 부정을 법으로 금지한다. 프랑스는 샤를리 에브도 사건 이후 풍자와 언론의 자유를 강하게 옹호해 왔지만, 동시에 증오 표현과 홀로코스트 부정에는 법적 제한을 둔다.
결국 민주주의 국가들도 하나의 답만 가지고 있지는 않다.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려는 원칙과 역사적 상처 및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책임 사이에서 각자의 균형점을 찾아온 것이다.
■ 5·18을 기억하는 방식
그렇다면 우리에게 5·18은 무엇인가.
5·18 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뼈아픈 뿌리다. 국가 권력이 시민의 자유를 짓밟았던 그날의 희생은 특정 지역의 기억을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공통된 유산이다. 따라서 5·18을 희화화하거나 왜곡하는 표현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희생자와 유가족의 고통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며, 역사적 진실을 훼손하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엄중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비판을 넘어 국가가 직접 간섭하거나, 제도로 표현을 규율하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현행 5·18 특별법의 허위사실 유포 처벌 조항을 둘러싸고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적 규제는 악의적인 역사 왜곡을 막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허위’와 ‘왜곡’의 범위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는 여전히 신중해야 할 문제다. 기준이 모호하거나 정치적으로 해석될 경우, 역사 연구나 비판적 토론까지 위축시킬 수 있고, 정치권이 상대를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할 위험도 있다.
역사를 지키기 위한 법이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부메랑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정치가 해야 할 일
더 큰 문제는 정치의 태도다. 5·18은 정당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치가 이를 이용해 편을 가르고, 상대를 공격하며,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순간 역사는 민주주의의 자산이 아니라 정쟁의 도구로 전락한다. 갈등을 조정하고 치유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사회적 상처를 헤집고 공격의 언어를 생산할 때, 상처받는 것은 희생자들과 민주주의 그 자체다.
기업의 마케팅이나 학생의 응원 역시 같은 원칙 위에서 보아야 한다. 기업의 부적절함은 시장과 소비자의 평가로, 학생의 잘못은 교육적 지도와 학교 공동체의 책임으로 풀어가야 한다. 불매운동도 표현의 자유이고, 비판도 표현의 자유이며, 사과 요구도 시민의 정당한 표현이다.
그러나 권력이 시장의 심판관이나 교육의 감시자로 직접 나설 때, 사회적 자정 능력은 위축된다. 대통령과 정치권력은 법과 원칙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남아야지, 모든 논란의 판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표현의 자유도 지켜야 하고, 역사적 책임도 다해야 한다. 다만 그 균형은 감정적 처벌이나 정치적 동원이 아니라, 법치와 시민사회의 성숙 위에서 찾아야 한다.
5·18은 권력을 위한 역사가 아니라,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역사다. 그래서 5·18을 기억하는 가장 성숙한 방식은, 그 이름으로 또 다른 권력의 과잉을 정당화하지 않는 일이다. 정치는 그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되어야지, 갈등을 키우는 불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조상명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 前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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