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학생들에게 AI 사용을 금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권한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그것을 자신의 공부와 일에 연결하는 능력 역시 중요한 공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면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도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지키게 하는 원칙이 하나 있다. AI에게 묻기 전에 먼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AI를 활용한 뒤에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를 함께 설명하도록 한다.
처음에는 번거롭다고 느끼던 학생들도 시간이 지나면 한 가지를 깨닫는다. AI는 답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자기 생각까지 대신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 모범답안의 시대는 끝났다
공부를 잘한다는 말은 오랫동안 정해진 길을 잘 따라간다는 뜻에 가까웠다. 교과서를 성실히 읽고,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고, 문제집을 여러 번 풀고, 시험지 위에 정답을 정확히 적어내는 사람을 우리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라 불렀다. 틀리지 않는 사람이 우수한 사람이었고, 빠르게 외우는 사람이 앞서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AI는 방대한 지식을 모으고, 요약하고, 비교하며, 논리적인 문장으로 정리한다. 사람이 며칠 걸려 찾아야 할 자료를 몇 초 만에 정리하고, 복잡한 개념도 그럴듯하게 설명한다.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는 것, 정답을 빨리 찾는다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공부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이제 공부는 지식을 쌓는 일에 머물 수 없다.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자기 언어로 다시 묻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남이 던진 질문에 답하는 사람보다, 아직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을 찾아내는 사람이 더 중요해진다.
■ 현장은 정답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현장에 가보면 교과서와 매뉴얼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문제가 많다. 계획서에는 맞는 말이 적혀 있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사람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르다. 숫자로는 설명되는 일이 사람 앞에서는 설명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규정에는 맞지만 마음에는 걸리는 결정도 있다.
재난 현장에서 대피 명령은 원칙대로 내려야 한다. 위험 지역은 지도 위에 선 하나로 그어진다. 그러나 그 선 안에는 혼자 사는 어르신이 있고, 거동이 불편한 주민이 있으며,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향하는 부모가 있다. 누군가는 재난 문자 한 통이면 움직일 수 있지만, 누군가는 문 앞까지 찾아가야 겨우 대피할 수 있다. 또 누군가는 문자를 받고도 아이를 찾기 위해 위험지역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다.
지도 위에서는 같은 위험지역이지만, 현장에서는 결코 같은 상황이 아니다. 매뉴얼은 선을 그을 수는 있지만, 그 선 안에서 누구를 먼저 업고 나갈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다시 묻고, 눈앞의 현상을 자기 언어로 해석하고,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해 책에 없던 답을 찾아내는 힘이다.
재난 대응 현장의 공직자든,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이든 결국 필요한 힘은 같다. 주어진 정보 안에 갇히지 않고, 사람과 상황의 맥락을 읽어내는 힘이다.
■ 생각은 과정에서 자란다
AI는 축적된 데이터와 패턴 속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답을 찾아낸다. 새로운 조합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조합이 왜 필요한지, 누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인간은 때로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엉뚱해 보이는 생각을 붙잡고, 남들이 지나친 틈을 들여다보고, 데이터가 말하지 못한 맥락을 읽어낸다.
공부한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사람은 AI와 경쟁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자신의 삶과 현장의 문제에 연결하는 사람은 AI를 가장 강력한 도구로 쓴다. 중요한 것은 AI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쓰기 전에 무엇을 생각했고, 쓴 뒤에 그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설명할 수 있느냐다.
완성된 답안만 보면 누구의 생각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처음의 질문, 중간의 고민, 수정된 판단, 마지막 결론까지 따라가 보면 그 사람의 사고가 보인다.
생각은 정답을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한 인간의 마지막 근육이다.

조상명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 前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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