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전국 곳곳에서 매장 불을 밝히던 대형마트의 대명사, 홈플러스의 매장 37곳이 끝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지난달 유동성 확보를 위해 내놓았던 '영업 잠정 중단' 카드가 한 달 만에 '영구 폐점'이라는 최후통첩으로 돌아왔다.
유통가에서는 이번 결정이 부진 점포 정리를 넘어, 사모펀드(PEF, Private Equity Fund) 체제 아래 누적된 재무 부담과 이커머스 중심의 유통 패러다임 변화가 맞물려 폭발한 '구조조정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벼랑 끝 선택, '잠정 휴업'에서 '영구 폐점'으로 직행한 이유
6월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 사측은 이날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와 일반노조에 공식 공문을 발송하고, 현재 휴업 중인 전국 37개 매장에 대한 전면 폐점 결정을 통보했다.
앞서 홈플러스는 지난달 10일, 전국 대형마트 매장 중 수익 기여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37개 점포의 영업을 잠정 중단한 바 있다. 당시 사측은 "영업 정상화와 단기 유동성 확보를 위한 일시적 조치"라고 선을 그었으나, 업계 안팎에서는 이미 자산 유동화를 위한 사전 단계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팽배했다. 우려는 불과 한 달 만에 현실이 됐다.
홈플러스가 이토록 속전속결로 폐점 카드를 꺼내 든 배경에는 압도적인 '재무 압박'이 자리 잡고 있다. 대형 오프라인 매장을 유지하는 데 드는 고정비(임차료, 인건비, 물류비 등)가 고물가·고금리 기조 속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이커머스의 공세에 밀려 집객력이 떨어진 매장을 들고 갈수록 적자 폭만 키운다는 계산이 굳어지자, 사측은 '휴업을 통한 숨 고르기' 대신 '폐점을 통한 비용 절감'으로 방향을 급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 구조조정의 칼바람…'자산유동화'와 '희망퇴직' 도마 위에
이번 폐점 결정은 필연적으로 대규모 인력 감축과 고용 불안을 동반하고 있다. 홈플러스 사측은 폐점 예정인 37개 점포 직원들을 대상으로 '자산유동화 점포 지원제도'를 적용하는 한편, 해당 점포에 근무하는 책임급(매니저 및 관리자급) 이상의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자산유동화 점포 지원제도는 매장 매각 및 폐점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로금 지급이나 타 점포로의 재배치 등을 골자로 하는 보상 대책이다.
그러나 현장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37개 매장이 한꺼번에 문을 닫을 경우, 남은 인근 매장으로의 전환 배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근 점포 역시 이미 인력이 포화 상태이거나 효율화 작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책임급 이상 희망퇴직'은 전방위적인 구조조정을 위한 압박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며,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발과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 오프라인 마트 잔혹사, 홈플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통 전문가들은 홈플러스의 이번 행보가 국내 오프라인 대형마트 업계 전반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첫째, '규모의 경제' 종말. 과거 매장 수가 곧 경쟁력이었던 시절은 끝났다. 쿠팡을 필두로 한 이커머스 기업들과 알리·테무 등 중국계 이커머스(C-커머스)의 가성비 공세 속에서, 덩치 큰 대형마트는 '수익성을 갉아먹는 공룡'으로 전락했다.
둘째, 사모펀드 소유 구조의 한계. 홈플러스의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는 그동안 매장 부지를 매각한 뒤 재임차하는 '세일앤리스백(Sale and Leaseback)'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해 왔다. 이 방식은 단기 통화 리스크를 줄일 순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막대한 임차료 부담으로 돌아와 부메랑이 됐다. 이번 37개점 폐점 역시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앞두고 재무제표를 강제로 날씬하게 만들기 위한 '벼랑 끝 다이어트'라는 시각이 많다.
홈플러스의 전국 단위 매장 축소는 유통 상권의 대대적인 재편을 의미한다. 홈플러스가 빠져나간 자리를 이마트·롯데마트 등 경쟁사들이 흡수할지, 혹은 오프라인 수요 자체가 완전히 온라인으로 이동할지가 주목된다. 더불어 당장 내일부터 시작될 노동조합과의 전면전은 홈플러스 경영진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다. 마트노조 등은 "사측이 유동성 위기의 책임을 현장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강력한 투쟁을 예고한 상태다.
영업 잠정 중단이라는 미봉책에서 '37개점 전면 폐점'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린 홈플러스. 이번 초강수가 체질 개선을 통한 생존의 돌파구가 될지, 아니면 브랜드 가치 하락과 고용 파탄이라는 파국으로 이어질지 유통업계의 눈과 귀가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