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글로벌 기술 투자업계의 '풍운아'이자 소프트뱅크의 수장인 손정의 최고경영책임자(CEO) 회장이 다시 한번 시장을 흔드는 초대형 선언을 던졌다. 이번에는 단순한 낙관론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정보통신(IT) 버블이자 혁명이었던 '닷컴 붐'의 무려 50배에 달하는 초거대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가 지목한 미래 인류의 먹거리는 바로 소프트웨어의 한계를 넘어 현실 세계를 움직이는 '피지컬 AI(Physical AI)'와 '로봇 산업'이다. 손 회장은 이를 차세대 '1조 달러(한화 약 1380조원)' 규모의 무주공산으로 정의하며, 발언 직전 유럽 대륙에 11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는 메가톤급 투자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최근 생성형 AI 시장의 단기 과열과 주가 조정 우려가 교차하는 시점에서, 글로벌 투자 거물이 던진 이 발언의 숨은 행간과 소프트뱅크의 '빅픽처'를 상세히 분석해 본다.
■ "지금은 인터넷 시작 단계"…닷컴 버블의 50배를 외치다
손정의 회장은 6월1일(현지 시간) 미국 경제매체 CNBC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현재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인공지능(AI) 열풍에 대해 확고한 역사적 이정표를 제시했다. "AI 혁명은 과거 닷컴 붐과 비교해 10배, 아마도 50배 이상 클 것이라고 본다. 이는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한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기술 혁명의 실현이다."
손 회장이 굳이 '닷컴 붐'을 비교 대상으로 끌어들인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수많은 벤처기업이 탄생하고 증시가 폭발했던 닷컴 시기는 오늘날 정보화 사회의 초석이 됐다. 하지만 손 회장은 당시의 변화가 인류가 맞이할 AI 혁명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지금의 AI는 인터넷이 처음 보급되던 극초기 시작 단계와 같다"는 것이 그의 냉철한 분석이다. 인터넷이 인간의 '소통과 정보 전달' 방식을 바꿨다면, AI는 인간의 '지능과 노동' 자체를 대체하거나 증폭하기 때문에 시장의 파이 자체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팽창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 대공황의 역사에서 찾은 힌트…"조정은 언제나 최고의 매수 기회"
현재 월가와 국내 증시 일각에서는 엔비디아를 비롯한 AI 반도체 및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 고점론과 'AI 버블 붕괴론'이 심심치 않게 고개를 들고 있다. 손 회장은 이러한 시장의 단기적 공포 심리를 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대공황)의 역사적 데이터로 정면 돌파했다.
그는 대공황 당시 전 세계 증시가 초토화되면서 당시 첨단 산업이었던 '자동차(모터리제이션)'와 '전자' 주식이 처참하게 무너졌던 기록을 상기시켰다. "역사를 돌아보면 위대한 기술이었던 전자와 자동차 산업도 1929년 폭락장에서는 비껴가지 못했다. 그러나 폭락 이후 지난 100년 동안 이 산업들은 수없이 우상향하며 인류의 문명을 지배했다. 언제나 시장에 조정은 존재한다."
기술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 자본의 과열과 단기적인 가격 조정은 필연적인 통과의례라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본질적인 기술의 유용성이다.
손 회장은 오히려 시장이 공포에 질려 AI 자산 가격이 내려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잠깐의 조정이 올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 순간이 역사상 최고의 투자 기회가 될 것"이라는 그의 발언은 소프트뱅크가 향후 펼칠 공격적인 매수 전략을 암시한다.
■ 화면 밖으로 나온 지능, '피지컬 AI'와 로봇이 1조 달러 장악한다
그렇다면 손정의 회장이 바라보는 AI 혁명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전문가들은 그가 언급한 '피지컬 AI(Physical AI)'에 주목한다.
현재의 챗GPT나 거대언어모델(LLM)은 컴퓨터 모니터나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글을 쓰고 이미지를 생성하는 '디지털 AI'에 갇혀 있다. 반면 피지컬 AI는 인공지능의 두뇌를 현실 세계의 물리적인 하드웨어, 즉 로봇, 자율주행차, 도심항공교통(UAM), 스마트 제조 공장에 이식하는 기술이다. AI가 스스로 주변 환경을 눈으로 보고(비전), 판단해 물리적인 팔과 다리를 움직여(행동) 인간의 육체노동을 완전히 대체하는 시대다.
손 회장은 인류의 노동 생태계를 통째로 바꿀 이 피지컬 AI와 로봇 산업이 단일 시장으로만 '1조 달러'를 가볍게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소프트뱅크가 과거 인수한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의 초저전력 칩 기술과, 보스턴 다이내믹스 등 로봇 지분을 거쳐 쌓아온 포트폴리오가 이 지점에서 하나의 거대한 퍼즐로 맞물리게 된다.
■ 구체화된 실행력: 프랑스에 110조원 투하, 유럽 AI 제국 건설
손 회장의 이번 호언장담이 시장의 신뢰를 얻는 이유는, 발언 바로 전날 말보다 무서운 '자본의 투하'를 먼저 증명했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손잡고 오는 2031년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전역에 총 750억 유로(한화 약 112조45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번 투자의 핵심 골자는 프랑스 현지에 5기가와트(GW) 규모의 초거대 AI 데이터 센터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5GW는 원자력 발전소 5기의 전력량과 맞먹는 규모로,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초대형 데이터 콤플렉스다.
손 회장은 마크롱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글로벌 AI 패권 경쟁의 날카로운 단면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미 미국 빅테크들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바탕으로 AI 인프라 독점 투자를 수행하고 있다. 유럽 역시 주권을 지키고 미래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독자적인 대규모 AI 인프라와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AI 패권 전쟁 속에서, 소프트뱅크가 유럽 대륙의 핵심 앵커(Anchor) 투자자로 들어가 인프라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적 포석이다. 데이터 센터라는 인프라(하드웨어)가 깔려야 그 위에서 피지컬 AI와 글로벌 로봇 군단이 원활하게 구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정의 회장의 투자 궤적이 늘 성공만을 가리켰던 것은 아니다. 과거 위워크(WeWork) 투자 실패 등으로 '버블 제조기'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20여년전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중국의 마진없는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에 베팅해 전무후무한 수익률을 기록하며 인터넷 시대를 예견했던 선구안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닷컴 붐 50배' 발언과 유럽을 향한 110조 원의 배팅은, 소프트뱅크가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FI)를 넘어 AI 시대의 판을 까는 인프라 공급자이자 '피지컬 AI 제국의 설계자'로 완전히 체질을 바꿨음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증시의 단기 과열 논란 속에서도 기술의 거대한 물줄기는 이미 디지털을 넘어 물리적 세계로 흘러가고 있다. 손정의의 이 거대한 도박이 100년 전 자동차 혁명처럼 인류의 삶을 통째로 바꿀 신호탄이 될지, 전 세계 테크 업계와 금융시장의 이목이 소프트뱅크의 다음 행보에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