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일본 경제의 자존심이자 ‘제조업의 심장’으로 불리던 도요타 자동차가 왕좌에서 내려왔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전 세계 인공지능(AI) 투자를 진두지휘해 온 손정의(손 마사요시) 회장의 소프트뱅크그룹(SBG)이다.
글로벌 증시를 강타하고 있는 AI 랠리의 온기가 일본 시장에 가장 강력하게 투영되면서, 소프트뱅크그룹이 도요타를 제치고 일본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우뚝 섰다. 이는 단순한 개별 기업의 주가 역전을 넘어, 내연기관과 제조 중심이던 일본 산업 생태계가 디지털과 AI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일대 사건이다.
■ 22년 만의 대역전극, 도쿄 증시 역사를 새로 쓰다
6월1일 닛케이아시아 등 현지 외신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도쿄 증시에서 소프트뱅크그룹의 주가는 8% 이상 폭등했다. 이로써 소프트뱅크그룹의 시가총액은 46조 엔(약 2,890억 달러)을 돌파하며 도쿄 증시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의 자리에 등극했다.
반면 오랫동안 일본 증시의 절대강자로 군람해 온 도요타 자동차의 시가총액은 약 45조엔 수준에 머물며 2위로 밀려났다. 도요타는 지난 2003년 12월 당시 시총 1위였던 이동통신사 NTT도코모를 제치고 정상에 오른 이후, 줄곧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일본 경제의 버팀목이었다. 특히 2024년3월에는 일본 기업 최초로 시총 60조 엔을 돌파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소프트뱅크가 도요타의 시총을 뒤집은 것은 닷컴 버블이 정점에 달했던 지난 2000년3월 이후 무려 22년 만이다. 2024년 3월만 해도 두 기업의 시총 격차는 50조엔까지 벌어지며 도요타의 독주가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최근 도요타의 주가가 성장 정체 우려로 부진을 면치 못한 반면, 소프트뱅크그룹은 글로벌 AI 투자 세력의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지난 1년 동안 주가가 4배나 급등하는 기염을 토했다.
■ 왕좌 등극의 일등 공신: '오픈AI'와 'Arm'이라는 역대급 원투펀치
소프트뱅크그룹이 이토록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눈부신 본업 실적과 더불어 손정의 회장이 점찍은 글로벌 핵심 AI 기업들의 가치 폭발이 자리 잡고 있다.
소프트뱅크그룹은 올해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3.5배 증가한 1조8200억 엔(약 114억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완벽한 펀더멘털 턴어라운드를 증명했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이 챗GPT 개발사인 미국 '오픈AI(OpenAI)'에 대한 대규모 투자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4월 이미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완료한 데 이어, 올해 추가로 200억 달러를 더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향후 예정된 자금까지 포함하면 총투자액은 약 650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투자자들이 환호하는 대목은 오픈AI의 기업공개(IPO) 계획이다. 오픈AI는 이르면 올해 9월 미국 증시 상장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번 IPO를 통해 역대 최대 규모인 600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증권가에서는 상장 후 오픈AI의 기업 가치가 1조 달러를 가볍게 넘어설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 역사적인 세기의 IPO가 성공할 경우, 지분을 대거 확보한 소프트뱅크가 얻게 될 투자 수익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기대감이 선반영되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또 다른 핵심 축은 영국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Arm 홀딩스'다. 소프트뱅크가 지난 2016년 일찌감치 인수해 현재까지도 약 90%의 압도적인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Arm은 AI 서버 및 모바일 칩 시장의 필수재로 꼽힌다. Arm의 주가는 AI 반도체 수요 폭발에 힘입어 지난 4월 초 이후 두 배 이상 폭등했다. 자회사의 가치 상승이 지주사인 소프트뱅크의 지분 가치 및 시가총액 확대로 고스란히 직결된 셈이다.
■ 일본 산업의 패러다임 시프트와 엔화 자산의 재평가
소프트뱅크의 시총 1위 등극은 글로벌 금융 시장과 일본 경제 전반에 상당한 파급 효과를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일본 증시는 도요타, 키엔스, 신에츠화학 등 전통적인 제조업·소재 기업들이 주도해 왔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기술주 중심의 랠리에서 미국 증시(나스닥)에 비해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AI 대장주인 소프트뱅크가 전면에 나서면서, 글로벌 패시브 자금(지수 추종 자금)이 일본 기술주 섹터로 대거 유입될 가능성이 커졌다.
또한 이번 시총 1위 등극으로 실탄과 신용을 확보한 손정의 회장의 ‘AI 제국’ 건설이 한층 빨라질 것이다. 자금력을 바탕으로 반도체(Arm)-플랫폼/소프트웨어(오픈AI)-인프라를 잇는 글로벌 AI 밸류체인 전반에 걸친 추가 M&A와 공격적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9월로 다가온 오픈AI의 상장 시점까지 소프트뱅크그룹은 일본 증시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술주 시장의 가장 강력한 모멘텀 투자처로 작용할 확률이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