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타임스 여원동 기자 | 미국과 이란 간의 지정학적 전면전이 3개월째 이어지며 글로벌 원유 시장의 공급망 마비가 심화되는 가운데, 그간 견고하게 버텨온 미국 경제의 '재고 방어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원유 공급 차질 속에서도 충분한 상업용 원유와 전략비축유(SPR)로 버텨왔으나, 5월 들어 재고 소진 속도가 가파르게 빨라지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경로에도 비상이 걸렸다. 시장에서는 하반기 인플레이션 압력이 재차 고조됨에 따라 연준이 연내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못하고 동결 기조를 장기화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 석유 재고 고갈 직면한 미국, 종전 협상 테이블 앉나
하나증권 리서치센터 전규연 이코노미스트와 이태석 연구원(RA)은 5월29일 발간한 'Global Macro Alert' 보고서를 통해 미국 경제를 지탱하던 원유 버퍼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분석했다.
전쟁 발발 이후 미국은 석유제품 수출을 이전 대비 2배 가까이 늘리며 대외부문 기여도를 높여왔다. 그러나 2023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던 미국의 상업용 원유 재고는 5월을 기점으로 급격한 감소세로 돌아섰다. 정부 차원의 전략비축유(SPR) 추가 방출이라는 고육책도 상업용 재고의 하락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미 가계 소비의 바로미터인 휘발유 재고의 온도가 급랭했다. 지난 4월 중순 이후 미 휘발유 재고는 가파르게 떨어져 과거 5년 평균치를 밑도는 것은 물론, 5년 내 최저 수준을 하회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리테일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5달러 선을 위협하며 가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하나증권은 미국이 자국 내 연료비 통제와 지지층 이탈 방지를 위해 조만간 진지한 태도로 종전 협상 테이블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 '트럼프 관세 전가'와 'AI 총수요'가 밀어 올릴 하반기 물가
보고서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되어 유가가 소폭 하향 안정화되더라도, 하반기 인플레이션 우려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관측했다. 전쟁 국면이 지나간 자리에 트럼프 행정부의 압도적인 관세 정책이 재차 유입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는 7월 24일 무역법 122조에 기반한 10%의 보편적 글로벌 관세 부과의 법적 시한(최장 150일)이 만료되나, 미 무역대표부(USTR)는 재발동 금지 조항이 없다는 점을 들어 추가 부과를 시사하고 있다. 비록 무역법원의 위법 판결과 연방항소법원의 집행 일시정지 결정 등 사법부의 제동이 걸린 상태지만, 트럼프 정부가 무역법 301조 등 우회 법안을 동원해 국가별·품목별 타깃 관세를 강화할 확률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연준(FRB) 데이터에 따르면 관세 부과 후 약 7개월이 지나면 소비자물가로의 누적 전가율은 1.0에 수렴한다. 즉, 하반기에 관세발 물가 충격이 본격화된다는 뜻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에 따른 실물 경기 자극도 인플레이션을 방어하는 연준의 발목을 잡는다.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대규모 자본지출(CAPEX) 급증은 거시경제 전반의 총수요 증가(Output gap 확대)를 유발해 구조적인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 미 연준 금리 인하 타이밍 상실…연내 '동결'로 경로 수정
국제결제은행(BIS)과 뉴욕연방준비은행(NYFED) 등의 지표를 종합하면, 미국 고용시장은 신규 대졸자들의 비대졸 직종 취업 비율이 상승하는 등 질적으로 일부 취약성을 노출하고 있다. 그러나 연준은 고용 둔화보다 물가 통제에 최우선 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외통수에 걸렸다. 전쟁 장기화 조율 과정에서 이미 금리 인하의 최적기를 놓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하나증권 리서치센터는 미국의 통화정책 경로 수정안을 전격 제시했다. 기존 '10월 한 차례 인하' 전망을 폐기하고, 하반기 내내 미 연방기금금리를 현 수준에서 묶어두는 '연내 금리 동결' 시나리오를 공식화했다.
시장이 기대하던 하반기 피벗(통화정책 전환) 가능성은 미국 내부의 재고 고갈과 구조적 인플레이션 복합 요인으로 인해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