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박철수 칼럼니스트 | 최근 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산업혁명의 압축판을 목격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생성형 AI를 비롯한 인공지능 기술은 이제 단순한 업무 자동화 수준을 넘어 산업의 구조와 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생산과 유통, 소비와 고객 응대, 데이터 분석과 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이 AI라는 거대한 흐름 속으로 빠르게 편입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거대해질수록 오히려 더 본질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좋은 서비스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필자가 풀필먼트 사업을 시작하며 오랫동안 마음속에 새겨온 표현이 있다. 바로 “물심동류(物心同流)”다. 물건과 마음이 함께 흐른다는 뜻이다. 물류(物流)와 SCM(Supply Chain Management)의 본질을 이보다 더 함축적으로 설명하는 표현을 아직 보지 못했다.
물류는 흔히 물건을 이동시키는 기능적 산업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는 물류의 본질은 훨씬 깊다. 고객은 단지 상품을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기업의 책임감과 배려, 신뢰와 태도를 함께 경험한다. 같은 상품이라도 어떤 공급망을 통해 전달되느냐에 따라 고객이 느끼는 만족과 브랜드의 가치가 완전히 달라지는 이유다. 결국 물류란 물건의 이동이 아니라 ‘신뢰의 전달’에 가깝다.
“물심동류”라는 표현 역시 필자가 만든 말은 아니다. 약 20여 년 전 중국 상하이에서 근무하던 시절, 항저우에서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던 고속도로 위 수많은 광고판 사이에서 우연히 접한 문장이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도 유독 그 네 글자가 강렬하게 남았다. 짧지만 본질을 꿰뚫는 촌철살인의 표현이었다. 이후 이 문장은 단순한 문구를 넘어 필자에게 SCM을 바라보는 철학이 되었고, 조직을 운영하는 기준이 되었다.
물류는 창고와 트럭, 시스템과 운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아무리 첨단 자동화 설비와 AI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도 사람의 마음이 빠진 공급망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고객 경험의 마지막 순간에는 결국 사람의 책임감과 진정성이 남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러한 철학이 더욱 중요해진 이유는 시장의 규모와 속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2025년 국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72조 원을 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전체 소매판매액에서 온라인쇼핑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50%를 상회한 것으로 분석된다. 같은 해 국내 택배 물량은 64억 개를 넘어섰으며 국민 1인당 연간 택배 이용 횟수도 125회를 초과했다.
물류는 더 이상 제조와 유통의 후방 지원 기능이 아니다. 소비와 유통을 움직이는 핵심 인프라이자 국민 일상의 신뢰를 떠받치는 사회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이커머스 기반의 풀필먼트 산업은 단순 보관·배송 기능을 넘어 IT, 데이터, 자동화, 고객경험이 융합된 독립 산업군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시장의 흐름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글로벌 물류기업인 DHL그룹은 2025년 약 829억 유로의 매출을 기록했고, 국내 대표 물류기업인 CJ대한통운 역시 12조 원이 넘는 연매출 규모를 달성했다.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보다 메시지다. 물류가 더 이상 기업 내부 지원 기능에 머무르지 않고, 독립적 경쟁력과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국내 기업들도 단순한 2자물류(2PL)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기술과 운영, 고객경험을 통합하는 진정한 3자물류(3PL)와 풀필먼트, 그리고 글로벌 수준의 SCM 역량을 갖춘 고도화 산업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이 과정에서 AI는 분명 강력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AI는 물류의 본질을 대체하는 기술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물류의 본질을 더 정교하게 구현하게 만드는 수단이어야 한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McKinsey & Company 는 생성형 AI가 물류 문서 작성 리드타임을 최대 60% 단축하고, 운영 인력의 업무 부담을 10~20%가량 줄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 글로벌 라스트마일 운영 현장에서는 AI 기반 수요예측과 경로 최적화를 통해 수천만 달러 규모의 비용 절감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경고도 존재한다. 비용 구조와 데이터 아키텍처, 현장 운영 프로세스, 조직의 수용성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으면 AI는 단지 보여주기식 시범사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결국 승부를 가르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떤 철학 위에 올려놓느냐이다.
그래서 필자는 AI 시대일수록 오히려 “물심동류”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한다. 물건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함께 흐르게 하는 것,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정확히 전달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미처 표현하지 못한 불편까지 먼저 읽어내는 것, 그것이 앞으로의 물류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재고 정확도와 리드타임, 파손률과 반품 처리, 고객 응대와 협력사 정산, 예외 상황 대응과 사후 책임에 이르기까지 공급망의 모든 접점에는 결국 사람의 태도와 진정성이 녹아들어야 한다. 그럴 때 물류는 단순한 비용센터가 아니라 고객의 신뢰를 창출하는 가치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과거에는 물류를 흔히 ‘배달’ 정도로 축소해 이해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 물류는 비즈니스 자체를 규정한다. 누가 더 빠르게 움직이느냐보다, 누가 더 정확하고 유연하며 인간적으로 고객을 이해하느냐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다. 당일배송과 새벽배송 경쟁의 본질 역시 단순한 속도전이 아니다. 고객의 시간을 얼마나 존중하는가, 고객의 불안을 얼마나 줄여주는가, 고객과의 약속을 얼마나 일관되게 지켜내는가의 경쟁에 가깝다.
AI 시대에 사람의 역할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정교해질 것이다. 기계가 예측과 최적화를 담당할수록 사람은 관계의 온도와 서비스의 맥락, 그리고 책임의 무게를 붙들어야 한다. 기술은 흐름을 빠르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 흐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도 물류와 SCM의 미래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고 싶다.
물심동류(物心同流).
물건과 마음이 함께 흐를 때, 물류는 비로소 산업을 넘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솔루션이 된다.

박철수 아워박스 대표이사 - 글로벌 유통 및 식음료 기업에서 30년 넘게 공급망 관리 분야를 두루 거친 물류·유통 전문가이다. 피자헛 코리아, 디아지오 코리아, AB인베브 아시아 태평양 부사장을 역임한 박 대표는 2017년 콜드체인 및 이커머스 풀필먼트 전문기업 아워박스를 창업했다. 예비 유니콘인 아워박스는 내년 IPO를 목표로 도전하고 있다.
※ [편집자주]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