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타임스 김재억 기자 | 디지털 소통의 범람 속에서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말하기’에 집착한다. SNS의 게시글부터 숏폼 영상까지,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열을 올리지만 정작 타인의 세계를 온전히 수용하는 통로인 ‘귀’는 닫혀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갈증과 소통의 단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듣기의 본질을 철학적·교육학적 관점에서 집대성한 역작이 출간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박인기 경인교육대학교 명예교수가 펴낸 신간 호모 아우디투스 ‘듣는 인간’은 인간의 정체성을 ‘말하는 존재’가 아닌 ‘듣는 존재(Homo Auditus)’로 재정의하며 새로운 인문학적 담론을 제시한다.
저자는 인류 문명이 지속되어 온 근간에 ‘경청’이 있음을 역설한다. 유년기의 인간은 활자를 읽고 쓰기 전, 부모와 주변의 음성을 들으며 세계관을 형성한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일상 언어 활동의 과반이 듣기에 할애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듣기는 세상과 관계를 맺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듣기는 수동적인 수용이 아니라, 고도의 인지 능력과 정서적 공감, 그리고 윤리적 판단이 결합된 ‘능동적 정신 작용’의 정점이다. 즉, 잘 듣는다는 것은 상대의 음성을 물리적으로 분별하는 차원을 넘어, 그 이면에 담긴 인격과 생애를 온전히 존중하고 수용하는 고도의 지적 행위라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저작은 현대 교육 시스템과 사회 구조가 지닌 맹점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현재의 학교 교육이나 비즈니스 소통은 필요한 정보만을 빠르게 골라내는 ‘전략적 듣기’에만 매몰되어 있다. 저자는 이를 넘어 메시지의 이면에 숨겨진 맥락과 관계, 심지어 발화되지 않은 ‘침묵의 울림’까지 포착하는 ‘열린 듣기’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제안한다. 이러한 경청의 확장은 현대 사회를 어지럽히는 가짜 뉴스와 자극적인 선동을 가려내는 비판적 시민 의식의 토대가 되며, 파편화된 인간관계를 복원하는 유일한 열쇠가 된다는 분석이다.
책 속에서 저자는 지혜의 왕 솔로몬의 일화를 통해 주제를 더욱 심화한다. 솔로몬이 신에게 간구했던 지혜의 본질은 히브리어로 ‘레브 쇼메아(Lev Shomea)’, 즉 ‘듣는 마음’이었다. 진정한 지혜란 군림하며 가르치는 독단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타자의 고통과 요구에 귀 기울이는 겸손에서 비롯됨을 시사한다. 이처럼 ‘호모 아우디투스’로서의 회복은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갈등으로 얼룩진 공동체를 치유하는 공존의 윤리가 된다.
필자인 박 교수는 평생을 국어교육과 문학교육 연구에 헌신한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 1951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EBS 프로듀서를 시작으로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 한국독서학회장 등을 역임하며 이론과 현장을 두루 섭렵했다. 현재는 경인교육대학교 명예교수로서 외교부 재외동포정책위원과 유라시아문화포럼 이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특히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이자 칼럼니스트로서 꾸준히 글쓰기를 실천해 온 저자의 내공은 이번 신간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도서출판 소락원이 펴낸 본서는 자연의 소리와 사물의 전언, 그리고 내면의 깊은 울림까지 듣기의 범주를 무한히 확장한다. 2025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제작 지원을 받은 이 저서는 삭막한 현대 사회에 진정한 소통의 의미와 경청의 미학을 일깨우는 필독서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