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거대한 폭풍전야의 정적이 흐르고 있다.
논쟁의 발단은 비트코인 인프라 기업 '카사(Casa)'의 공동창업자 제임스 롭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그는 10년 이상 거래가 끊긴 지갑 속 비트코인 약 560만개(시가 약 4400억 달러=약 530조~620조원)가 양자 컴퓨터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적으로 구형 주소 방식(P2PK 등)을 사용하는 이 휴면 코인들은 양자 컴퓨터의 연산 능력이 고도화될 경우 공개키로부터 개인키를 추출당할 위험이 크다. 제임스 롭은 "해커에게 도난당해 시장에 매물이 쏟아지는 대재앙을 겪느니, 네트워크 차원에서 이들을 동결(Hard Fork를 통한 무효화)하는 것이 차악의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P2PK(Pay to Public Key)는 비트코인 초기 네트워크에서 사용되었던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거래 전송 방식이다. 이름 그대로 수신자의 '공개키(Public Key)'를 거래 조건으로 직접 노출하여 비트코인을 송금하는 구조를 갖는다.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초기에 채굴 보상을 지급하거나 거래를 처리할 때 주로 사용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P2PK 방식은 보안상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거래 과정에서 수신자의 공개키가 블록체인상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연산 능력이 압도적인 양자 컴퓨터가 등장할 경우 공개키로부터 개인키를 역산해낼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안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현대의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공개키를 한 번 더 암호화(해싱)하여 숨기는 P2PKH(Pay to Public Key Hash) 등의 진화된 주소 체계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동결 논쟁의 중심에 선 '휴면 비트코인'의 상당수가 바로 이 P2PK 방식의 구형 주소에 묶여 있어 양자 컴퓨터 공격의 1차 타깃으로 거론되고 있다.
'카사(Casa)'는 비트코인을 포함한 디지털 자산의 안전한 보관과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의 가상자산 보안 인프라 기업이다. 일반적인 거래소나 단일 개인 지갑과 달리, 자산 탈취나 분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개의 키를 조합해 거래를 승인하는 '멀티시그(Multi-sig)' 기술 기반의 수탁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보안에 극도로 민감한 고액 자산가나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셀프 커스터디(자기 수탁)'를 지원하며 업계 내에서 높은 신뢰를 쌓아왔다. 최근에는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장기적 보안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양자 컴퓨터의 공격 위협으로부터 휴면 비트코인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적 대안과 프로토콜 업그레이드의 필요성을 주도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 "동결하는 순간 비트코인은 죽는다"…쏟아지는 반론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비트코인 인프라 기업 '오프 넷(OP NET)'의 사무엘 채드 패트 창업자의 경고는 서늘하다.
그는 비트코인을 동결하는 행위 자체가 시장에 "비트코인 소유권은 조건부이며, 다수의 합의에 의해 언제든 박탈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신호를 준다고 분석했다. 이는 비트코인의 탄생 철학인 '검열 저항성'과 '사유재산의 절대성'을 뿌리째 흔드는 일이다. 만약 동결이 결정된다면 비트코인의 가격 재조정은 즉각적이고 파괴적으로 일어날 것이며, 이는 해킹 피해보다 더 큰 '역사상 최악의 폭락'을 불러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기관 투자자들에게 비트코인이 매력적인 이유는 '중앙 통제 부재'와 '불변성' 때문이다. 패트 창업자는 "검열로부터 자유롭다는 전제하에 진입한 기관들은 자산이 더 이상 기존 투자 조건(Investment Mandate)에 맞지 않게 되므로, 선택의 여지 없이 비트코인을 강제로 매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프 넷(OP NET)'은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확장성과 기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된 차세대 비트코인 레이어2(L2) 메타 프로토콜이다. 비트코인의 보안성과 탈중앙성을 유지하면서도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을 구현하여, 비트코인 생태계 내에서 이더리움과 같은 분산형 애플리케이션(dApp)과 가상머신(BVM) 구동을 지원하는 인프라를 제공한다.
최근 '오프 넷'은 비트코인의 기술적 진보뿐만 아니라 시장의 건전성 및 투자자 권리 보호 이슈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양자 컴퓨터 공격에 대비한 '비트코인 동결' 논쟁과 관련해, 자산 소유권의 불변성과 검열 저항성이라는 비트코인의 근본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보수적 실용주의' 입장을 견지하며 업계의 정책적 담론을 주도하고 있다.
'라이트닝 벤처스(Lightning Ventures)'의 쿠쉬부 쿠랄 파트너 역시 "동결은 실용적인 해결책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접근"이라며, 비트코인의 핵심 가치인 무허가성과 중앙 통제 부재를 훼손하는 행위는 비트코인의 '사망 선고'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라이트닝 벤처스'는 비트코인 생태계와 그 레이어2 솔루션인 '라이트닝 네트워크(Lightning Network)'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비트코인 전문 벤처캐피털이다. 소위 '비트코인 온리(Bitcoin-only)' 원칙을 고수하며 타 알트코인이나 토큰 발행 사업은 배제하고, 오직 비트코인 인프라, 결제 솔루션, 금융 서비스 등 비트코인 경제권 확장에 기여하는 초기 단계 스타트업을 발굴하여 육성한다.
특히 이들은 단순한 재무적 투자를 넘어, 비트코인의 핵심 가치인 탈중앙성, 불변성, 검열 저항성을 옹호하는 강력한 '비트코인 맥시멀리즘' 성향을 띠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양자 컴퓨터 위협에 따른 비트코인 동결 논쟁에서도 라이트닝 벤처스는 기술적 편의성보다 비트코인의 근본 철학을 사수하는 것이 자산 가치 유지의 핵심이라는 입장을 표명하며 업계 내 투자 심리를 대변하고 있다.
■ 대안은 없나? "강제 몰수 대신 자발적 이전"
채굴기업 '새즈마이닝(Sazmining)'의 켄트 할리버튼 CEO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양자 컴퓨터의 위협은 인정하되, 이를 방어할 수 있는 더 나은 보안 도구를 개발하고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안전한 신형 주소로 코인을 이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정석이라는 입장이다. "프로토콜 수준의 자산 몰수는 결코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신념이다.
'새즈마이닝'은 미국 워싱턴 D.C. 바로 인접한 교외 지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본사를 둔 지속 가능한 비트코인 채굴 및 호스팅 솔루션 전문 기업이다. 이들은 수력발전 등 100% 재생에너지만을 사용하여 탄소 중립적인 채굴 환경을 구축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위스콘신과 파라과이의 이타이푸 댐 등에서 발생하는 잉여 전력을 활용해 채굴 장비를 운용함으로써, 환경 오염 논란이 있는 채굴 산업을 친환경적 모델로 전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 운영 방식에 있어서도 독특한 철학을 견지하고 있다. '새즈마이닝'은 고객의 채굴 보상을 회사가 보관하지 않고 개인 지갑으로 직접 송금하는 '비수탁(Non-custodial)' 방식을 고수하며 자산 소유권의 독립성을 강조한다.
최근 켄트 할리버튼(Kent Halliburton) CEO를 필두로 양자 컴퓨터 위협에 따른 휴면 비트코인 동결 논쟁에서 "강제 몰수가 아닌 기술적 도구와 자발적 이전이 해답"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것 역시, 개인의 자산 통제권을 최우선시하는 새즈마이닝의 기업 가치와 맞닿아 있다. 이들은 개인 투자자들이 대형 기관과 동등한 조건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투명하고 지속 가능한 채굴 생태계 확장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12만6천 달러라는 사상 최고치를 찍은 뒤 6만 달러까지 밀렸던 비트코인은 최근 7만9천 달러 선까지 회복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이번 '동결 논쟁'은 비트코인이 단순한 투기 자산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얼마나 견고한 철학적 기반을 가졌는지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이다.
비트코인의 가치는 코드의 보안성뿐만 아니라 '누구도 내 지갑을 건드릴 수 없다'는 사회적 계약에서 나온다. 양자 컴퓨터라는 기술적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 이 계약을 파기하는 순간,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Gold)이 아닌 흔한 포인트 적립금 수준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시장은 지금 기술적 업그레이드보다 '불변의 원칙'을 지켜낼 수 있는지에 더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