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안후중 칼럼니스트 | 대통령이 직접 "사기당한 것 같다"고 말해야 했던 사건이 있다. 다원시스다.
표면만 보면 한 중견 제조사의 경영 실패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기면, 이 사태는 대한민국이 자랑해 온 'K-철도' 서사가 얼마나 얄팍한 토대 위에 세워져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9149억 원짜리 ITX-마음 계약 가운데 218량이 미납이고, 서울 5호선 200칸은 초도품이 단 한 칸도 들어오지 않았다. 서해선에서는 주행 중 차량 연결기가 두 번 부러졌다. 이쯤이면 한 회사의 일탈이 아니라, 시스템의 자백이다.
다원시스는 한때 '게임 체인저'로 불렸다. 2015년 서울 2호선 노후 차량 교체 사업을 따내며 현대로템 독점 구조를 깬 신예였고, 정부와 발주처는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그 박수의 본질은 무엇이었나. 결국 '더 싸게 만들 수 있다'는 약속에 대한 환호였다. 그 약속을 받쳐 줄 기술적·재무적 체력은 정작 검증되지 않았다. 우리는 경쟁을 도입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 도입한 것은 덤핑이었다.
기술 점수가 85점만 넘으면 가장 낮은 가격이 이긴다는 '2단계 경쟁 입찰'은 입찰장 안에서는 합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차량 한 대가 30년을 달려야 하는 산업에서, 입찰가의 합리성과 차량 수명의 합리성은 같은 단어가 아니다. 싼 값에 따낸 계약은 싼 값의 부품을 부르고, 싼 값의 부품은 결국 피로 파괴(Fatigue Failure)라는 이름으로 시민의 머리 위에서 부서진다. 서해선의 부서진 연결기는 금속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선급금이다. 다원시스는 2차 계약 선급금 2457억 원 가운데 약 1059억 원을 1차 계약분 부품 구매 등 다른 곳에 썼다. 새 계약으로 받은 돈으로 묵은 계약의 구멍을 메우는 구조. 우리가 익히 아는 단어가 떠오른다. 폰지(Ponzi)다. 차이가 있다면 투자자가 개인이 아니라 국가라는 점, 그리고 손실을 떠안는 주체가 결국 시민이라는 점뿐이다. 공공계약이 언제부터 한계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가 되었나.
신사옥 의혹은 이 구조의 상징이다. 협력사 자재 대금이 수개월째 막혀 공정이 멈춘 와중에도 안산 본사 신사옥 대금은 정상 집행됐다는 정황이 제기됐다. 회사 측은 "선급금과 무관한 자체 자금"이라고 해명한다. 그러나 한 회사의 금고 안에서 공공의 돈과 사적 돈이 따로 색깔을 띠고 있을 리 없다. 들어온 돈이 어디로 갔는지가 아니라, 들어와서는 안 될 곳까지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는 회계 구조 그 자체가 문제다.
가장 무거운 대목은 3차 계약 직전의 '공정률 조작' 정황이다. 월 납품 4량을 일시적으로 12량까지 끌어올렸다가, 계약을 따내자마자 다시 멈췄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능력의 한계를 인지한 상태에서 발주처를 기망해 추가 수주를 한 것이고, 형법 제347조 사기죄의 정의에 정확히 부합한다. 동시에 이는 발주처의 검증이 얼마나 형식적이었는지를 보여 주는 자기 고발이기도 하다. 누가 속였느냐만큼 무거운 질문은, 누가 속을 준비가 되어 있었느냐다.
문제를 한 회사의 도덕적 해이로 좁히는 순간, 우리는 같은 사태를 또 맞는다. 다원시스는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원인은 세 가지다. 첫째, 가격만 보는 낙찰 구조. 둘째, 이행 능력과 재무 건전성을 사후에도 들여다보지 않는 발주처. 셋째, 수천억 원 선급금이 어느 통장으로 들어가 어느 협력사 손에 닿는지 추적하지 않는 회계 사각지대. 이 세 가지가 결합하는 한, 다원시스가 사라져도 제2, 제3의 다원시스는 반드시 등장한다.
해법은 이미 보고서 위에 다 나와 있다. 가격·기술·이행 능력을 통합 평가하는 종합심사낙찰제 전면 도입, 생애주기비용(LCC·Life Cycle Cost) 배점 강화, 선급금 전용 계좌와 에스크로(Escrow) 방식 실시간 모니터링, 그리고 설계 하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이재명 대통령이 지시해 추진 중인 선금 지급 비율 제한과 국회의 '상습 납품 지연 방지법' 발의는 그 첫걸음일 뿐, 끝이 아니다. 발주처인 코레일과 서울교통공사, 국가철도공단의 검수·감독 체계 자체를 외부 감사 대상에 올려야 한다.
한국은 폴란드,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K-철도 수출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자국 시민의 출근길 안전조차 지키지 못하는 차량을 만든 나라가, 어떤 얼굴로 해외 발주처를 마주할 것인가. 철도는 외교다. 그리고 외교는 신뢰다. 다원시스 사태로 잃은 것은 한 기업의 신용이 아니라, 'Made in Korea Rail'이라는 국가 브랜드의 무형 자산이다.
다원시스는 거울이다. 그 거울에 비친 것은 한 기업이 아니라, 싼값에 환호하고 빠른 성장에 만족하며 검증을 미뤄 온 우리 자신이다. 거울을 깨뜨리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거울 앞에 서서, 무엇을 바꿀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수사기관의 결론이 나오기 전에, 정책 당국과 산업계가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안후중 경제타임스 칼럼니스트 / 외교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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