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래 칼럼니스트 |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던져졌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은 이를 반신반의했다. 그저 경제학자들이 만들어낸 신조어일 뿐이라고 여긴 사람도 적지 않았다. 증기기관과 전기, 컴퓨터와 인터넷이 세상을 바꿔놓았던 것처럼, 또 한 번의 거대한 혁명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었다. 이미 3차 산업혁명의 결실인 스마트폰은 우리의 손안에 들어와 일상과 관계, 소비와 소통의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사람들은 그 이상 무엇이 더 달라질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친 뒤, 그 긴 터널의 끝에서 우리 앞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AI 였다. 그리고 우리는 비로소 깨달았다. 4차 산업혁명은 선언이 아니라 현실이었고, 우리는 이미 그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을. 더구나 이번 혁명은 과거와는 결이 다르다. 이전의 산업혁명이 인간의 노동을 보조하고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드는 데 초점이 있었다면, AI 혁명은 인간의 고유한 역할마저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더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지금 세상에는 불안의 언어가 넘쳐난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지고, 스타트업 현장에서는 개발자의 업무 대부분을 이미 AI가 대신하고 있다. 반복적이고 육체적인 노동의 영역에서는 자율주행 자동차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빠르게 현실로 다가와 인간의 대체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기술은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어느새 경쟁자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오히려 ‘레거시’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AI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활용해야 한다. 기술을 외면하는 개인과 기업은 뒤처질 수밖에 없지만, 자신의 경험과 통찰, 축적된 지식 위에 AI를 얹는 개인과 기업은 오히려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 처음부터 AI 환경에 익숙한 세대보다, 인문학적 사유와 삶의 맥락을 충분히 체득한 뒤 AI를 도구로 삼는 세대가 더 강력할 수 있다. 기업 또한 AI 기술 자체만 앞세우는 조직보다, 깊은 도메인 지식과 현장 감각을 갖춘 조직이 AI로 무장할 때 훨씬 더 큰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
혁신은 늘 쉽게 변하지 않던 것이 변하기 시작하는 순간에 일어난다. 그렇기에 AI 시대의 승자는 가장 새것만 좇는 이들이 아니라, 오래된 것의 가치를 새롭게 증명해내는 이들일지 모른다. 레거시는 낡은 유산이 아니라, 변화의 시대에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축적된 힘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 힘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레거시의 역습’이다.

장승래 | ㈜디버 대표이사 - LG유플러스 사내벤처로 ㈜디버를 창업했으며, AI 기반 물류 서비스 디버와 디지털 메일룸 디포스트를 통해 기업 물류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고 있다. 현장에서 축적한 경험과 통찰을 바탕으로 산업, 기술, 비즈니스의 변화를 깊이 있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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