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타임스 김은국 기자 | 대한민국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경제적 풍요나 기술적 진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국가 정체성'의 핵심, 즉 '보훈(報勳)'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도산아카데미(이사장 구자관, 원장 김철균)는 2월11일 오전, 서울 이태원 몬드리안 호텔과 온라인 생중계를 통해 제435회 도산 리더십 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국가의 존립 근거이자 미래 교육의 핵심 가치인 보훈 정책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이었다.
■ "기억을 넘어 책임으로"...보훈, 국가 지속 가능성의 열쇠
이날 강연자로 나선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국가보훈정책 현황 및 과제’라는 주제 아래, 보훈의 본질을 “기억을 넘어 책임으로 이어지는 국가의 약속”이라고 규정했다.
권 장관은 보훈이 단순히 유공자에게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는 시혜적 차원의 복지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는 "희생과 헌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며, 이는 곧 우리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뿌리"라고 강조했다. 특히 보훈 정책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때 비로소 국민이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위기 상황에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이 마련된다는 설명이다.
■ 도산 안창호의 '인격 혁명'과 보훈의 만남
권 장관은 특히 도산 안창호 선생의 철학을 인용하며 보훈의 도덕적 가치를 역설했다.
"도산 선생은 생전 "나라 사랑은 곧 사람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개인의 수양과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연결 지었다. 나라를 위한 헌신을 개인의 명예를 넘어 공동체를 바로 세우는 실천으로 인식한다. 물질적 보상을 넘어, 유공자의 명예를 드높이고 그 가치를 계승하는 '사람 중심'의 가치 보훈을 지향한다. 이러한 도산 정신은 오늘날 국가보훈부가 추구하는 '국민 통합'의 가치와 궤를 같이한다. 과거의 역사를 단순히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국민적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가치 계승의 정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제언이다.
■ 미래를 향한 포석, 보훈 정책의 4대 핵심 과제
권 장관은 급변하는 사회 환경과 세대 교체에 발맞춘 국가보훈부의 4대 미래 핵심 과제를 구체화했다. 보훈이 단순한 과거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미래 사회의 가치로 기능하게 하겠다는 의지다.
첫째, 보훈 대상자에 대한 실질적 지원 체계를 강화한다. 보훈 대상자가 생활 속에서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보상금 수 수준을 현실화하고, 의료와 복지 서비스의 질적 혁신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둘째, 청년(MZ) 세대와의 역사적 공감대 형성에 주력한다. 미래 주역인 청년들이 보훈을 '나와 상관없는 과거'가 아닌 '나의 현재적 자유를 지켜낸 뿌리'로 인식하도록 맞춤형 교육과 뉴미디어 콘텐츠를 대폭 강화한다.
셋째, 디지털 기반의 보훈 행정 고도화를 실현한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해 보훈 대상자가 별도의 신청을 하기 전, 국가가 먼저 필요한 서비스를 파악해 제공하는 '선제적 맞춤형 행정' 시스템을 구축한다.
마지막으로, 일상 속 보훈 문화의 확산을 꾀한다. 보훈을 특정 기념일의 일회성 행사로 치부하지 않고, 우리 곁에 있는 '제복 입은 영웅'들을 상시 존중하고 예우하는 문화가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도록 돕는다.
권 장관은 "보훈은 과거에 대한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하고 가치 있는 투자다"라는 말로 강연을 끝맺었다.
■ 독립운동 정신 잇는 리더들의 집결
이번 포럼에는 독립운동의 가업을 잇는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흥사단 김전승 이사장과 한만길 공의회장, 유봉환 대표감사, 나종목 흥사단독립유공자후손돕기본부 상임대표를 비롯해 도산안창호기념관 김재인 관장, 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 문영숙 이사장, 유관순기념사업회 유혜경 회장 등 120여 명의 현장 참석자들은 보훈 정책의 미래에 대해 심도 있는 질의응답을 나눴다.
1989년 창립 이후 36년간 이어져 온 도산 리더십 포럼은 그동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포함한 700여 명의 명사를 초청하며 한국 사회에 '정직과 통합'의 리더십을 확산해왔다. 포럼은 매월 셋째 주 수요일 오전에 열리며, 관련 영상은 유튜브 채널 '도산아카데미'를 통해 시청 가능하다.
■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3선 의원 거친 ‘행정·정치 전문가’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보수 정당 출신의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자 행정 전문가다. 1957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제15대 국회를 시작으로 16대, 17대까지 안동에서 내리 3선 의원을 지냈다. 특히 17대 국회에서는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정책 조정 능력을 발휘했으며, 이후 장관급인 제25대 국회사무총장을 역임하며 방대한 조직을 이끄는 행정 역량을 검증받았다.
과거 ‘꼬마민주당’ 시절부터 개혁 소장파 정치인으로 활동해온 그는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평가받는다. 2025년 7월, 제3대 국가보훈부 장관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국민 통합'과 '실질적 예우'를 행정의 최우선 가치로 내걸고 보훈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 2026년 보훈 예산 6.6조 시대...‘보상 강화·의료 혁신’에 방점
2026년도 국가보훈부 예산은 전년(6조4467억원) 대비 약 3.7% 증가한 6조6870억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이번 예산안은 국가유공자의 헌신에 대한 실질적 보상과 더불어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보훈 서비스 고도화에 초점을 맞췄다.
- 보상금 인상 및 예우 강화 : 국가유공자 보상금은 평균 5% 인상된다. 특히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7급 상이자 등에 대해서는 6.5%의 인상률을 적용해 형평성을 높인다. 생존 애국지사에 대한 특별예우금은 기존보다 2배 인상(월 최대 345만원)되며, 참전명예수당 역시 2026년 49만원 지급을 목표로 전년 대비 4만원 상향 조정된다.
- 보훈의료 사각지대 해소 : 지역 간 의료 격차를 줄이기 위해 보훈병원이 없는 강원과 제주 지역에 ‘준보훈병원’을 도입한다. 거점 병원을 지정해 보훈병원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집 근처 위탁병원을 연간 200개씩 늘려 오는 2030년까지 총 2000개소를 확보함으로써 진료 편의성을 대폭 강화한다.
- 복지 안전망 구축과 디지털 전환 : 참전유공자 사망 후 홀로 남겨진 배우자에게 월 15만원의 생계지원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신설한다. 고령의 독거 유공자를 위해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안부 확인 및 건강 관리 서비스를 도입해 촘촘한 복지 안전망을 구축한다.
- 인프라 확충 및 보훈 외교 확대 : 충남권 호국원 신설을 위한 타당성 조사와 지역 보훈회관 9개소 신축을 추진한다. 아울러 튀르키예 한국전 참전비 건립을 비롯해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에 대한 전수 실태조사를 실시하는 등 보훈의 범위를 국제적으로 넓힌다.























